>
| 2025년 11월 30일 주일설교요약 | 운영자 | 2025-11-29 | |||
|
|||||
[성경본문] 누가복음16:19-31절 개역개정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20.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26.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27.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누가복음 16장 19-31절 (부자와 나사로) 대림절(대강절)은 예수님의 오심을 갈망하는 절기입니다. 대림절은 성탄절을 기점으로 4주 전 주일부터 시작해서 12월 24일까지의 기간을 의미합니다. 이 대림절은 ‘오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Adventus에서 유래했습니다. 대림절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을 기억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둘째, 종말의 때에 예수님의 재림을 학수고대하며 다시 이 땅에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도록 만듭니다. 초의 의미에 관해서도 잠시 나눠보면, 진보라 색은 ‘기다림과 소망’의 촛불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촛불입니다. 옅은 보라색 초는 ‘회개와 평화의 촛불’을 의미합니다. 분홍색 초는 ‘사랑과 나눔, 기쁨의 촛불’입니다. 흰색 초는 ‘회복과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각각의 의미를 담아서 4주간에 걸쳐 초를 켜는 것입니다. 1. 종말은 반드시 온다
오늘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통해서 성경은 무엇을 교훈하고 있습니까? 19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이 부자는 귀한 옷을 입고 날마다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 부자는 돈만 많았던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세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과는 반대로 나사로라고 하는 사람은 거지였습니다. 그는 부자의 문 앞에서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음식을 먹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21절을 보면 그런 상황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여기서 헌데라는 것은, 나사로가 오랫동안 종기나 상처로 인해 고통받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부자와 나사로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죽음 이후에 간 곳은 달랐습니다. 나사로는 천국에 들어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그런 반면에 부자는 지옥에 갔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이렇게 세상에서 생명이 끝나는 순간 갈 수 있는 곳은 단 두 곳뿐입니다. 그런데 이 부자가 천국에 있는 아브라함을 바라보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24절). 지금 이 부자는 견디기 힘들 만큼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부자의 간절한 호소를 듣고 아브라함이 이렇게 말합니다.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26절에 가서는,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천국과 지옥은 서로 왕래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자는 다시 한번 간절히 호소합니다. 나사로를 세상에 보내 형제 다섯 명에게 자신의 상황을 증언하여 지옥에 오지 않도록 조치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또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그러면 왜 이 이야기가 중요할까요? 반드시 종말은 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국과 지옥은 이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 갈라진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가족, 내 자녀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그들을 위한 가장 소중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2. 종말의 때를 맞이하는 태도
오늘 말씀을 보면 부자는 하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려서 다시 이 세상으로 보내면 자기 형제들이 하나님을 잘 섬겨 천국으로 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31절). 오늘 말씀 가운데 부자는 바리새인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16장 14절에서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를 전개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부자의 삶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올바르게 사는 것인지 깨닫게 하셨습니다. 부자가 입은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은 사치스러움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매일 호화로운 잔치를 여는 것을 통해서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야기 가운데 부자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정말 부자의 잘못이 없었을까요? 부자는 자신이 가진 것을 평생 자신만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재능과 물질을 허락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레위기 19장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너희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다 거두지 말고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신명기 15장에서는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면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쥐지 말고 네 손을 펼쳐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그런데 부자에게는 그런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결국 가진 물질과 재능은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데 활용하라고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자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재물과 재능을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늘 자신의 놀라운 능력을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들을 위해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가진 신적인 능력을 소외되고 약한 자들을 위해 사용하셨고, 그들로 하여금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들을 하나님과 영혼을 섬기는데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이타적인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대림절을 보내면서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의 의미를 되새겨 보며 사랑과 나눔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흘려보낼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