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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11월 23일 주일설교요약 | 운영자 | 2025-11-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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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역대하35:20-27절 개역개정20. 이 모든 일 후 곧 요시야가 성전을 정돈하기를 마친 후에 애굽 왕 느고가 유브라데 강 가의 갈그미스를 치러 올라왔으므로 요시야 21. 느고가 요시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르되 유다 왕이여 내가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내가 오늘 그대를 치려는 것이 아니요 나와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사 속히 하라 하셨은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르지 말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노라 하나 22.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오히려 변장하고 그와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골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 23. 활 쏘는 자가 요시야 왕을 쏜지라 왕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가 중상을 입었으니 나를 도와 나가게 하라 24. 그 부하들이 그를 병거에서 내리게 하고 그의 버금 병거에 태워 예루살렘에 이른 후에 그가 죽으니 그의 조상들의 묘실에 장사되니라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요시야를 슬퍼하고 25. 예레미야는 그를 위하여 애가를 지었으며 모든 노래하는 남자들과 여자들은 요시야를 슬피 노래하니 이스라엘에 규례가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며 그 가사는 애가 중에 기록되었더라 26. 요시야의 남은 사적과 여호와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행한 모든 선한 일과 27. 그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행적은 이스라엘과 유다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역대하 35장 20-27절 (지금은 분별할 때입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은 예상 밖의 상황을 통해서도 들려진다.
21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느고가 요시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르되 유다 왕이여 내가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내가 오늘 그대를 치려는 것이 아니요 나와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사 속히 하라 하셨은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르지 말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노라” 이 구절을 보면 세 번에 걸쳐 하나님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명령하셨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너는 하나님을 거스르지 말라” 이 표현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일이니, 너는 내 일에 관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 속에서 누구의 행동이 옳다고 봐야 하겠습니까? 성경은 느고의 입에서 나온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변장하고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했다” 이방 신을 섬기던 느고의 말이 맞다면, 왜 하나님은 우상을 섬기는 느고의 입을 통해 말씀하셨던 것일까요?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을 우리 안의 지식과 경험에 가두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만나고 경험했던 하나님, 내가 알고 있던 하나님만이 전부인 양 말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시고자 할 때,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방법을 내 기준과 경험 안에서 생각하고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됩니다. 우리 인간의 지식으로는 하나님의 깊이와 넓이, 크기를 가늠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하나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하며 업적을 남겼던 요시야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은, 하나님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일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완전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바벨론에 의해 멸망 당한 유다 백성들이 70년의 포로 생활을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그 일을 행한 사람이 고레스왕이었습니다. 고레스왕은 이방 민족의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미 약속하신 것처럼, 70년의 시간이 차면 다시 고국으로 돌려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던 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해야 하겠습니까? 나의 선입견과 편견으로 인해 하나님 음성에 귀를 닫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경험한 범위 안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고집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요시야의 행동은 영적인 분별력이 부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시야 입장에서는 하나님 말씀이 이방 왕에게서 나와서는 안 되는 거였습니다. 이렇게 요시야는 하나님께서 느고에게 말씀하시고 명령하실 수 있다는 것을 간과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무엇으로도 제한받지 않으시며 일하신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은 예상 밖으로 들려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적인 감각과 분별력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자신들의 생각과 지식, 경험 안에 하나님을 가두고 평가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그러면 그 틀을 속히 깨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초월적인 존재이십니다. 하나님은 그 무엇에 제한받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예상 밖의 상황으로부터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감각을 키울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2.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각자 분별력을 갖추며 살아갑니다. 세상에서의 분별은 성공과 실패로 이어지지만, 영적 생활 속에서 잘못된 분별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애굽 과의 전쟁은 유다 멸망에 대한 전조였습니다. 이유는 전쟁의 패배로 인해 유다가 애굽의 속박을 받아 국권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36장 10절을 보면 오늘 본문과 유사한 장면이 나옵니다. “내가 이제 올라와서 이 땅을 멸하는 것이 여호와의 뜻이 없음이겠느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올라가 그 땅을 쳐서 멸하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앗수르가 유다 왕국에 처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자신은 하나님의 뜻으로 왔다고 강조했습니다. 앗수르는 이방 민족이었고 우상숭배 국가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유다를 멸망시키라고 자신들을 보냈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본문과 유사한 상황이 벌어졌지만 히스기야 왕과 요시야 왕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요시야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명령한 것을 거스르지 말라”는 느고의 말을 듣고, 곧바로 “변장하고 싸우려 들었습니다.” 하지만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의 말을 듣자마자 무릎끓고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사자가 18만 5천명의 앗수르 군대를 물리치고, 히스기야 왕에게 승리를 안겨 줬습니다. 이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문제 앞에서 취해야 할 행동은 기도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방법이지만,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이 기도입니다. 난처하고 분별이 안 되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분별력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요시야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하겠습니까? 때로는 예기치 않은 상황 속에서 예상 밖의 사람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올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위급한 상황 앞에서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앞세우기보다는 하나님께 먼저 기도함으로써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영적인 감각과 분별력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다양한 학문과 과학, 문화 현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훼손하고, 이념과 사상으로 성경의 진리를 대적하고 있습니다. 그런 시대 속에서 우리와 자녀들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평소에 경건 생활에 힘쓰고, 성령께서 주시는 분별력과 영적 감각으로 무분별한 이 시대 속에서 믿음을 지켜나갈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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