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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19일 주일설교요약 운영자 2025-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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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22:54-62절 개역개정

54. 예수를 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

55.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는지라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더니

56. 한 여종이 베드로의 불빛을 향하여 앉은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하니

57.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이 여자여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58. 조금 후에 다른 사람이 보고 이르되 너도 그 도당이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아 나는 아니로라 하더라

59. 한 시간쯤 있다가 또 한 사람이 장담하여 이르되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60.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아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아직 말하고 있을 때에 닭이 곧 울더라

61.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62.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누가복음 2254-62(멀찍이 따라가니라)

 

1. 주님과 믿음의 안전거리

 

베드로는 예수님과 먼 거리를 유지했습니다. 54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를 잡아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예수님이 잡히시기 전의 모습과는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그동안 베드로가 보여줬던 당당한 모습과도 매우 다릅니다. 그러면 그동안 베드로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마태복음 14장을 보면 물 위로 걸어오시는 주님을 보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오라고 하시는 예수님 말씀에 물 위로 담대히 걸어갔습니다.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질문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이렇게 베드로는 어느 제자들보다도 앞장서서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는 매우 능동적인 사람이었고,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 당시에 그의 말은 진심이었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순간이 와도 반드시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러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멀찍이 따라간 원인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자신의 신앙 상태, 믿음의 상태를 정확히 몰랐습니다. 자신이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수 있는 믿음의 상태임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633절에서 했던 베드로의 고백은 자기 열정과 감정으로 가득한 고백이었습니다.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또한 35절 말씀에서도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이런 그의 고백은, 자신의 신앙 상태를 잘 모르는 무지함에서 나온 고백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신앙 상태를 정확히 알고 계셨던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그럼 이것이 베드로만의 모습일까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실수하고 쉽게 넘어지는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믿음이 좋은 것처럼 착각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안전거리는 주님과 얼마나 가까이하고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주님과 가까이한다는 것은 일상 속의 생활로도 검증할 수 있겠지만 평소에 경건 생활에 얼마나 마음을 쏟느냐에 달려있기도 합니다. 지속적인 기도 생활과 말씀 묵상의 삶이 하나님과의 거리를 가깝게 해줍니다. 이것이 신앙의 안전거리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주님과의 거리가 어느 정도입니까? 밀착해서 가까이 따라가고 있습니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감정에 치우치고, 자기 열심에 빠져있는 성급한 베드로의 모습을 교훈 삼아 주님과 영적인 안전거리를 잘 유지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신앙의 미성숙함

 

주님과 먼 거리를 유지했던 베드로의 행동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신앙생활의 미성숙함에서 온 결과였습니다. 베드로의 신앙을 보면 매우 감정적이고 요동치는 물결과도 갔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매우 열정적입니다. 자신감도 넘쳐 보이고 앞서 행하는 모습이 좋은 믿음의 소유자처럼 여겨집니다. 그렇지만 안정감이 없습니다. 그는 갈릴리 바다를 걸어오시는 주님을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그의 태도를 보면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처럼 여겨집니다.

 

그런데 물 위를 걷던 베드로의 태도는 어떠했습니까? 의심으로 가득 차서 물속에 빠져들며 살려달라애원했습니다. 변화산에서 모세, 엘리야와 이야기를 나누시는 주님에게 갑자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9:33). 그런데 이 구절 마지막에 기록하기를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생각 없이 말했다는 것입니다.

 

미성숙한 신앙의 특징은 상황에 따라 변하는 불안정함입니다. 매사에 감정이 앞서기 때문에 신앙의 안정감이 없습니다. 베드로의 열정은 이렇게 자기감정에 치우친 열정이었습니다. 감정에 치우친 열정이 신앙을 잘 세워주던가요? 일시적인 효과는 있겠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의 열심과 노력으로는 주님이 원하시는 제자다운 신앙까지는 다다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잡으러 온 대제사장의 수하인 말고의 귀까지 자를 수는 있었지만, 예수님이 잡혀가실 때 거리를 두고 멀찍이 따라가는 연약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훈련을 잘못시킨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그 가르침에 반응하는 제자들의 마음은 훈련생으로서 바른 태도를 갖추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의 연약함이 어디에 있었을까요?누가복음 2245-46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하지 않으면 나타나는 현상은 유혹과 시험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자신의 신앙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지 못하면서 저는 절대로 주님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착각에 빠졌던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열정과 노력에 근거한 베드로의 신앙이었습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멀어지면, 예수님과도 멀어집니다. 예배의 자리를 소홀히 하면, 예수님과의 관계도 소홀해집니다. 말씀을 등한시하면 어느 순간 주님보다 세상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입니다. 이것이 영적 세계의 원리입니다. 따라서 늘 영적인 민감성을 가지고 깨어 기도하고, 예배와 말씀 생활에 전념하며 주님을 밀착해서 따라가는 신앙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눔 질문

1. 여러분은 예수님과의 안전거리가 몇 미터입니까? 스스로 거리를 측정해 보시고 결과를 나눠보시기 바랍니다.

 

2. 베드로는 3년 동안 주님을 따라다녔으면서도 끝내 멀찍이 거리를 두었습니다. 그 이유는 미성숙한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성숙함과 미성숙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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