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17일 주일설교요약 | 운영자 | 2025-08-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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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복음2:1-11절 개역개정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한복음 2장 1-11절 (가나에서 시작된 표적) 1. 표적은 예수님을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표적은 겉으로 드러난 기적을 말합니다. 요한복음에는 일곱개의 표적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나타난 이 일곱까지 표적들은 단순히 기적과 같은 상황만을 보여준다거나, 현실적인 문제 해결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표적을 보여줬던 것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 보여주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이루시기까지, 그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에 이정표와 같은 역할을 한 것이 표적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고 있는 표적은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한 사건을’ 단순히 현실적인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됩니다. 그 중심에는 반드시 예수님을 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문제에 봉착하면 그 문제만을 우리 인생의 중심에 놓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문제를 풀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창고 구석에 처박아두는 도구처럼 하나님을 우리 삶의 중심 밖으로 밀어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고 있는 가나의 혼인 잔치 이야기는 우리 삶 속에서 밀려난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놓아야 함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가나의 혼인 잔치는 예수님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배경이었습니다.’ 사건의 발단을 보면 마리아가 예수님께 한 말에서부터 비롯됩니다. 3절에서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처음에 예수님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예수님은 육신의 어머니의 부탁이나 간청을 들어주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7절을 보니까 예수님은 마리아의 청을 완전히 거절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예수님께서 하인들로 하여금 항아리에 물을 채우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연회장에게 갖다주도록 함으로써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는 표적을 보이셨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말을 거부하셨다가 포도주를 만드셨을까요? 요한복음 6장 40절 말씀을 보시면,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것은 십자가를 향해 걷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로써 자신을 드러낸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2. 제자들은 표적을 통해 믿음을 가졌습니다.
5절에서 마리아는 하인에게 말합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마리아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 삶에 어떤 곤혹스러운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지체하지 말고 속히 기도해야 합니다. 포도주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즉시 주님을 찾았던 마리아처럼 우리도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되시는 주님을 속히 찾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표적을 보지 못한 제자들이 아직 예수님을 믿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41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났지만 아직은 믿음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제자들을 데리고 가나 혼인 잔치에 갔던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따라갔던 제자들이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표적’을 보고 나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11절 말씀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물론 표적이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그 반대인 경우도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다 믿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은, 참된 믿음의 본질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가나의 혼인 잔치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표적을 경험한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표적을 경험했습니까? 그 사람들은 예수님 말씀에 순종한 하인들이었고,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이나 주님과 함께 한 인물들이었습니다. 그 외의 사람들은 질 좋은 포도주의 맛만 봤을 뿐 예수님의 표적을 목격하지는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닙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을 경험한 몇몇 사람들처럼 다수가 아니라 소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왜 다수의 사람이 아니라 소수일까? 이 질문 속에서 우리는 이런 생각을 가져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과 신앙의 일차적인 관심이 예수님이 아니라 이 땅의 삶이 주된 관심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인생의 다양한 문제 속에서도 주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을 갖고 주님을 내 삶의 중심에 놓고 주님을 따르는 것.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한 평생 신앙생활 하면서 주님의 은혜만 맛보는 다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그 믿음 안에서 주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는 소수의 사람이 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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