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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3월 23일 주일설교 요약 | 운영자 | 2025-03-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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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마태복음 27장 45-46절) 1. 침묵하신 예수님
마가복음 15장 33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 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제 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했다고 말씀합니다. “온 땅에” 어둠이 임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가 유대인들에게 임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 지도자들로부터 불법적인 체포를 당하셨습니다. 그렇게 불법 재판을 신속히 진행하면서 ‘십자가형’을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사형 언도를 받으시고 가혹한 채찍으로 인해서 온몸에 살점이 뜯겨져 나가는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불법 체포를 당하시고 모진 고초를 겪고도 십자가를 지고 가시던 예수님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침묵으로 일관하셨습니다. 여러분 고통 중에 침묵할 수 있습니까?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온몸에 전해질 때 참을 수 있습니까? 해산의 고통이 얼마나 심합니까? 인생의 문제라도 만나면 얼마나 탄식하고 하소연하며 괴로워합니까? 그러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침묵을 어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십자가를 져보지 않고 주님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있는 시간은, 하나님께서 잠시 등을 돌리고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은 예수님과 깊은 교제의 시간을 가졌지만, 이 시간은 예수님의 시선을 외면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따라서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시간은, 하나님과의 단절로 오는 고통과 외로움의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마음을 잘 묘사하고 있는 시가 시편 22편에 나와있는 다윗의 시입니다“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이 시는 시인의 마음이 얼마나 큰 단절의 고통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에 대한 괴로움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죽음을 보며 침묵하셨지만, 사실 그 침묵은, 하나님의 사랑을 모든 자들에게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이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를 살리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보여주었습니까?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죄 용서함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것은 짐승의 피로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흠이 없는 건강한 양과 염소 등을 잡아서 그 짐승에게 죄를 전가시켰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죄를 용서하기 위한 하나님의 안전장치였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영원한 희생의 제물이 되심으로 나의 모든 죄, 우리들의 모든 죄를 단번에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짐승으로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죄의 문제를 해결 받는 통로가 열렸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용서받았고, 자유를 얻었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 일을 반드시 이뤄야 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고난 속에서도 침묵하셨던 것입니다. 2. 버림받은 예수님
46절 말씀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예수님의 절규는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신 것 같은 고통에서 온 외로움의 절규였습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기도 하지만, 육신을 입고 있는 참사람이셨기 때문에 인간이 겪는 슬픔과 외로움의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지기 전 하나님께 마지막 기도를 드리실 때 함께 했던 세 명의 제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심히 슬프고 고민스럽다. 너희는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겠느냐?” 주님의 마음은 심히 슬프고 괴로웠던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인류는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므로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대가를 치르게 함으로써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죄가 없는 예수님만이 영원한 제물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십자가 사건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전부터 미리 십자가 사건에 관해서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이사야 53장 5절과 6절 말씀을 보시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인간의 삶을 살아보셨습니다. 또한 죽음의 고통을 겪으셨기 때문에 고난받는 자의 심정을 너무도 잘 아셨습니다. 참 신께서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참된 메시아로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방식입니다. 말로만 하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희생과 헌신이 있을 때 참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단순한 침묵이 아닙니다. 죄 많은 인간들을 살려주시겠다고, 아무 죄도 없는 사랑하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주신 슬픔에서 오는 하나님의 눈물이었습니다. 아버지를 향하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면서까지도 스스로 선택한 참혹한 형벌을 참아내신 그 십자가의 사랑을 세상은 알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만난 사람들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먼저 알고 깨달은 우리가 허락된 삶의 자리에서 아직 복음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희생과 때로는 침묵의 사랑으로 채워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랑의 본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며 이 사순절 기간을 말씀과 기도 안에서 보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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