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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29일 주일설교 요약 운영자 2024-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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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1-10(두 부류의 사람들)

 

오늘 본문을 보면 다윗의 왕권을 두고 세력다툼을 벌이는 <두 부류의 사람들>에 관해 나옵니다. 본문 1절에서는 이 사건이 다윗의 노년에 발생한 일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다윗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럼 두 부류의 사람들을 통해서 무엇을 교훈하고 있는 것일까요?

 

첫째,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5절을 보시면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도니야를 이렇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높였다자신을 스스로 높이는 행위는, 하나님 앞에서 죄에 빠져있는 상태를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아도니야는 스스로를 높이는 교만한 죄를 범했습니다. 잠언 3032절을 보면, 만일 네가 미련하여 <스스로 높은> 체하였으나라고 말씀하고 있고, 잠언 165절에서는,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을 높이는 자를 싫어하실 뿐만 아니라 폐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도니야를 중심으로 반역을 도모한 사람들은, 자신의 뜻을 앞세웠습니다. 7절에서 그 인물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그들이 따르고 도우나 요압은 다윗의 군대장관이었습니다. 아비아달은 제사장이었습니다. 정직하고 진실하게 나라를 다스리고 본을 보여야 하는 고위 공직자들이 아도니야에게 포섭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는 무관한 자들이었습니다. 특히 요압이나 아비아달 같은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지도자들은 아도니야가 의롭고 정당하기 때문에 따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보다도 자신들의 목적이나 영달을 이루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옳고 그름>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들의 행동은 하나님의 뜻과는 아무관계없이 자신들의 뜻과 목적을 이루기 위해 반역을 꾀했습니다. 아도니야가 왕권에 대해 가졌던 강한 의지와 야심은 지금까지 준수 되어온 이스라엘의 전통을 위협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들인 사울과 다윗은 하나님이 세우시고 기름 부음으로써 왕권을 인준받았습니다. 아도니야는 이런 전통을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하게 자기 욕망과 탐심에 이끌려 사는 자들의 슬픈 결과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사기 9장에서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스스로 왕이 되었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게 되었습니다. 압살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도니야의 무모한 행동도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225절을 보면,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매 그가 아도니야를 쳐서 죽였더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그를 지지하며 따랐던 요압도 쓸쓸한 죽음과 함께 이스라엘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인간의 과도한 욕망이 보여준 결과입니다. 욕망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영적인 눈을 가려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또한 마음과 정신을 흐려놓고, 영적인 판단력을 어둡게 만들어서 가야 할 길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지나친 욕망에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업신여겼을 때 파멸을 맞이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위치에서 하고 있는 일들이 <오직 자기만을 위한>것인지, <하나님의 뜻>을 위한 것인지 살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본문 8절 말씀에서는,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의 용사들은 아도니야와 같이하지 아니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 인물들은 솔로몬 편에 선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중심의 가치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에 나단 선지자는 솔로몬이 다윗의 왕위를 계승하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감당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다윗의 계승자로 택하셨음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모든 상황들을 다윗에게 보고함으로써 지혜롭게 해결해 갑니다. 나단 선지자가 이렇게 지혜롭게 풀어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내면에는, 기본적인 욕망이 있습니다. 이 욕망은 사람으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채우도록 충동질합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 안의 결핍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욕망 그 자체를 문제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욕망이 우리의 삶을 과도한 방향으로 이끌어 죄를 짓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균열을 가져오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욕망이 죄를 짓게 하는 것은 어느 순간부터일까요? 하나님께 속한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할 때입니다. 그래서 욕망에 사로잡힌 자들의 특징을 보면, <오직 자기 목적만을 위하여>일하고, <자기를 드러내는데>힘쓰고, <자신의 입지를 굳히고 자기만의 성공을 위해> 결과물을 내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타자를 향한 배려심이 부족합니다.

 

성경에서을 보면 이런 욕망을 위해 살다간 인물로 롯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의 갈등으로 인해 인생의 기로에 서게 되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해결하기보다는 눈에 좋고 보암직하고 자기 만족감을 채울 수 있는 곳을 향해 떠났습니다. 그 결과 불의 심판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비록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말씀을 따라 나아갔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따라갔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가룟 유다도 3년이라는 세월 동안 주님이 베푼 기적과 이적을 경험하고 천국 복음을 수없이 들었지만 돈을 향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출세하려는 세속적인 욕망을 따라 살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그 제자들을 이끌고 다니시던 예수님은 핍박과 모진 고초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온전히 순종하며 사셨습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다 보면 세속적인 욕망 앞에서 갈등하며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때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하시겠습니까? 오늘 말씀은 아도니야와 같이 <스스로를 높이며> <자기를 위하여> 과도한 욕망을 가져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아도니야가 스스로를 높이고 자기를 위하여 반역을 도모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과 부르심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본주의적인 생각과 권력에 대한 탐욕으로 스스로 왕이 되겠다고 결심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성령에 이끌려 가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눈먼 자가 되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소망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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