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8일 주일설교 요약 | 운영자 | 2024-12-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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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1:18-25절 개역개정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24.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임마누엘 예수 (마태복음 1:18-25) 오늘 설교의 주제는 예수님은 누구신가 하는 것입니다. 제가 전할 핵심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예수님은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러 오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있기 위해 오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주제가 바로 오늘 설교 제목인 ‘임마누엘 예수’라는 이름 속에 담겨 있는 내용입니다.
오늘 설교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이 말씀은 마리아 본인이 성령으로 잉태된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요셉에게 가서 자신이 성령으로 잉태된 사실을 알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19절은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라고 말씀합니다. 요셉은 율법에 따른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살고자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약혼녀가 간음했을 경우, 돌로 쳐 죽여야 한다는 모세의 율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리아를 돌로 쳐 죽임으로써 자신이 참 유대인임을 증명할 수도 있었지만, 율법의 칼날을 휘두르는 대신, 율법의 핵심인 사랑과 용서로써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20절은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주의 천사’는 가브리엘 천사를 말합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먼저 “다윗의 자손 요셉아”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은 메시야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심을 의미합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요셉에게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율법을 충실히 지키는 의로운 사람이라 간음한 여인을 아내로 맞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자기가 마리아를 내치면 앞으로 마리아는 어떻게 될까 생각하니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간음한 마리아를 용납하고 데려올까 하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요셉이 어떻게 할지 괴로워하다가 지쳐서 잠들었을 때, 그의 꿈에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물론 요셉이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다 이해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24-25절을 보면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요셉은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입장을 고려하지 읺았고, 사람들의 비난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이처럼 주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요셉은 마리아를 자기 집으로 데려왔지만,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요셉의 씨라는 오해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21-23절을 보면, 가브리엘 천사는 태어날 아기에게 붙여질 두 가지 이름을 알려주었습니다. 하나는 ‘예수’라는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입니다. 먼저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여호수아’를 헬라어로 음역한 것인데, 히브리어 ‘여호수아’는 ‘여호와가 구원하신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가브리엘 천사는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부연 설명했습니다. 또 하나의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은 히브리어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태어날 아기에게 붙여질 이름은 ‘임마누엘 예수’인데, 이 이름을 풀어서 설명하면,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 그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습니까? 우리의 죄를 대속(代贖)하여 죽으심으로써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대속’이란 ‘대신하여 속량(贖良)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속량’은 노예로 팔려간 사람의 몸값을 치르고 자유인의 신분이 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죄를 대속하려면, 그 자신에게 죄가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인간 가운데에는 죄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 없는 하나님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완전한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면서 완전한 사람이십니다. 예수님이 완전한 인간이셔야 하는 것은 인류를 대표하기 위함이고, 예수님이 완전한 하나님이셔야 하는 것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함입니다. 바로 이것이 기독교가 이야기하는 중심 교리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올바로 깨닫고 믿을 때, 비로소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라는 이름이 예수님의 구속 사역에 대한 이름이라면,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되심에 대한 이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임마누엘 되신 하나님, 세상에 오신 하나님, 내 곁에 오신 하나님, 나를 만나주신 하나님, 내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 앞에 나타나셨을 때, 그 분은 누구나 가까이 가서 그분의 옷자락을 만질 수 있고, 그분의 눈에 우리의 눈동자를 맞출 수 있으며, 얼마든지 친구처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애롭고 평화로운 분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 앞에 나타나셨을 때, 그분은 가난한 사람들, 고통당하는 사람들,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찾아가셔서 함께 거닐고, 함께 웃고 울고 함께 식사하시면서 그들을 위로하시고, 참 소망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멀리 보이는 하나님, 높은 곳에 계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항상 내 안에, 나와 함께, 내 곁에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알게 해주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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