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21일 주일설교 요약 | 운영자 | 2024-01-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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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베드로전서4:12-13절 개역개정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고난을 대하는 자세 (베드로전서 4:12-13) 베드로전서는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가 쓴 두 권의 서신 가운데 첫 번째 서신입니다. 이 서신은 베드로의 말을 실루아노가 대필했습니다. 5:13절에 의하면 이 서신은 바벨론에서 기록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의 바벨론이 아니라, 고대의 바벨론처럼 세계에 위세를 떨쳤던 로마를 가리킵니다. 로마를 바벨론으로 표현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일종의 암호 같은 것으로 교회를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둘째는, 로마와 바벨론의 유사성 때문입니다. 바벨론과 로마는 엄청난 무력으로 순식간에 세계를 제패했습니다. 셋째는, 로마가 아직 멸망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대적한 바벨론이 한순간에 멸망한 것처럼 로마도 결국 멸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1:1절에서 베드로는 이 편지를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쓴다고 하였습니다. ‘흩어진 나그네’는 로마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 세계 각지로 흩어진 유대인 기독교인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박해를 피해 지금의 튀르키에 지역으로 이주했지만, 그곳에서도 박해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이 편지를 써서 보낸 것입니다. 베드로전서에서 가장 많이 단어는 모두 16번 나오는 ‘고난’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고난이라는 단어 중에서 1/3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연관이 있습니다. 즉 고난 중에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며 이기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많이 나오는 단어는 ‘소망’입니다. 고난 중에 부활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이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의 주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고난 가운데 가져야 할 그리스도인의 소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는 ‘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고난을 받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신학적으로 가장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에서 베드로가 전한 고난에 대한 가르침을 ‘고난의 신학’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어떤 성경보다도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참된 소망에 대해 말하고 있기에 ‘소망의 서신’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은 왜 세상에서 고난을 받는 것일까요?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3:17절에서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두 종류의 고난이 있음을 말했습니다. 하나는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악한 세상으로부터 박해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하나는 악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의 채찍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4:15-16절에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고난은 어떤 종류의 고난입니까? 선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입니까? 아니면 악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입니까? 오늘 함께 생각해 볼 고난은 ‘선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입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을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고난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첫째, 오히려 기뻐해야 합니다(1:6-9).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났는데 어떻게 오히려 크게 기뻐할 수 있습니까?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이 능력으로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시험을 통해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이유는, 믿음의 결과인 영혼의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을 때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두 번째 자세는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고난을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2:19-21). 당시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하인이나 종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종종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인하여 주인들로부터 부당하게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름답다”는 것은 “칭찬받을만한 일이다”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그리스도인이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을 때 가져야 할 자세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는 것’입니다(4:12-13).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이 당하는 박해를 단순히 악한 세상 때문에 당하는 것으로만 보지 않고, 시련을 통하여 성도들을 연단하며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케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의 한 방편으로 보고 있습니다. 12절은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합니다. 성도들이 그리스도 때문에 여러 가지 고난을 받을 때 취해야 할 첫 번째 태도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상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할 이유는 그것이 우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연단'은 ‘긍정적인 결과를 얻기로 되어있는 시련(test)’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불 시험'은 불 속에서 금속이 제련되는 것처럼 성도의 신앙을 위해 더욱 견고히 연단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난과 시험을 표현한 것입니다. 13절은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고난이나 고통을 좋아할 사람은 없지만, 우리는 고난의 한 가운데에서도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그것이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때문에 고난을 받으면 그것은 곧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됩니다. 그것은 주님과 우리가 하나라는 증명이며, 우리가 주님께 속하여 그분을 잘 따르고 그분을 위하여 살고 있다는 입증이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것이 우리에게 두 종류의 기쁨을 허락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지금 소망 중에 즐거워하는 기쁨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우리의 소망이 성취될 때 가지게 될 영원하고 충만한 기쁨입니다. 현재의 기쁨에는 슬픔과 아픔이 뒤섞여 있지만, 미래의 기쁨은 현재의 기쁨을 압도하는 환희로만 채워져 있습니다. 이 미래의 기쁨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 성도들만 누릴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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