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7일 주일설교 요약 | 운영자 | 2024-01-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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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창세기13:10-18절 개역개정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1.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13.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눈을 들어 바라보라 (창세기 13:10-18) 오늘 본문인 창세기 13장은 눈을 들어 바라본 두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한 사람은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보고 그곳을 거주지로 정했습니다. 현명한 선택 같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곳에 가서 재산도 잃고 아내도 잃고 말았습니다. 또 한 사람은 눈을 들어 가나안땅을 바라보고 그곳을 거주지로 정했습니다. 당시에는 어리석은 선택 같았지만, 하나님께서 그 땅에 복을 주심으로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고,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갔습니다. 그때 조카 롯을 함께 데리고 갔는데, 롯의 아버지이며 아브라함의 형인 하라가 일찍 죽었기 때문입니다. 마침 자식이 없었던 아브라함은 롯을 자식처럼 여기고 데리고 다니면서 보살폈습니다. 16절을 보면 롯도 소유가 많았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아브라함과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2:2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셔서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복을 내리시고,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과 함께 있었던 롯은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롯이 아브라함과 헤어지게 됩니다.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된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표면적인 이유고, 다른 하나는 영적인 이유입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아브라함과 롯이 모두 양을 치는 유목민이었기 때문입니다. 제한된 목초지로 인해 두 사람이 고용한 목자들 사이에 자주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롯에게 “우리는 한 골육(骨肉)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조카에게 먼저 선택하라고 양보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左)하면 나는 우(右)하고, 네가 우(右)하면 나는 좌(左)하리라”.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양보였습니다. 10절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보았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요단 들이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지만, ‘눈을 들어’에 해당하는 성경 원어 “나우사우”라는 단어가 암시하는 것은, 롯이 탐욕에 사로잡혀 소유하려는 욕망으로 요단 들을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즉 롯은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롯이 보기에 요단 들은 심지어 여호와의 동산, 즉 에덴동산 같았습니다. 그러나 롯은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죄악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창세기 13:13절은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롯이 이 사실을 몰랐을 리 없습니다. 하지만 “괜찮아. 나만 착하면 되지” 하고 무시한 것입니다. 사람이 탐욕에 사로잡히면 소유하려는 열망 외에 아무 생각도 없게 됩니다.
롯이 떠난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셨습니다. 실은 아브라함과 롯이 헤어지게 된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일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롯을 헤어지게 하셨을까요? 창세기 12:1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너는 너의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네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신 것은, 우상숭배와 타락한 문명 세계로부터 떠나가라는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문명과 우상숭배의 영향이 덜한 가나안땅으로 아브라함을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아브라함이 고독하게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믿음의 조상이 되는 훈련을 받도록 계획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곳에 오래 있지 못했습니다. 점점 남쪽으로 내려가더니 그곳에 가뭄이 들자 아예 이집트로 이주해버렸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집트에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다가 바로 왕에게 아내를 빼앗기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극적으로 개입하셔서 아내를 찾게 되자 비로소 가나안 땅으로 돌아옵니다.
아브라함은 이집트에서 돌아온 후, 하나님의 인도로 처음 가나안 땅에 도착했던 벧엘과 아이 사이에 제단을 쌓고, 수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즉 신앙생활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롯이 함께 있는 한 그것은 온전히 친척을 떠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철저한 절망과 고독 속에서 하나님만 바라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롯이 아브라함을 떠나게 한 것입니다.
창세기 12장과 13장에서 하나님은 세 번 나타나셔서 “땅과 자손에 대한 약속을 세 번 반복해서 확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허전한 마음을 위로하시려고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떠나간 롯에 대해서는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아브라함이 가져야 할 참믿음과 소망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땅과 땅의 티끌처럼 많은 그의 후손에 대한 약속”이었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세 가지를 명령하셨습니다. 첫째, 네가 있는 곳에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믿음과 영의 눈으로 약속의 땅을 바라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일어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구약성경 원문을 보면 “일어나라”는 단어가 “쿰”으로 되어있습니다. “쿰”이라는 단어에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그 땅을 종(從)과 횡(橫)으로 두루 행하여 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약속은 허황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속에서, 그리고 역사 속에서 반드시 성취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눈을 들어 바라보라”고 하신 말씀은 믿음의 눈으로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1:1절의 말씀처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본문의 마지막 구절인 18절은 아브라함의 믿음과 소망을 보여주는 중요한 내용입니다. 아브라함이 거주지로 정한 ‘헤브론’은 산지였습니다. 롯은 많은 사람이 사는 평지의 성읍 가까이에 거주지를 정했지만, 아브라함은 사람이 살지 않는 산지의 수풀 속에 거주하면서 하나님께 단을 쌓았습니다. 즉,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경건하고 고독한 예배자의 길, 선지자의 길을 택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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