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31일 주일설교 요약 | 운영자 | 2023-12-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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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무엘상7:3-14절 개역개정3.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4.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5.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6.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7.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그들의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8.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 9.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10.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11.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13.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14.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에벤에셀의 하나님 (사무엘상 7:3-14) 오늘 설교 제목은 ‘에벤에셀의 하나님’입니다. 히브리어로 ‘에벤’은 ‘돌’이라는 뜻이고, ‘에셀’은 ‘도움’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에벤에셀’은 ‘도움의 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단순히 한 ‘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여기까지 우리를 도와주신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사무엘상 7장의 역사적 배경은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지배 아래에 있을 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려 20년 동안 블레셋의 지배 아래에 있었으며,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는 ‘기럇여아림’의 산속 깊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20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공개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길 수 없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일인지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에게 이 문제를 상의했습니다.
그러자 사무엘은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고 말했습니다. 4절은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고 말씀합니다.
5-6절은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고 말씀합니다.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물을 길어 여호와의 제단 앞에 붓고, 종일 금식하며,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미스바’라는 이름은 ‘금식하며 회개하는 기도회’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7-8절은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그들의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라고 말씀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급히 ‘미스바’로 쳐들어온 이유는, 이스라엘이 ‘미스바’에서 거행한 종교의식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 하나로 뭉쳐 성전(聖戰)을 준비하기 위한 행위로 파악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당황하지 않고,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렸습니다. 9절을 보면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표현은 ‘젖 먹는 어린 양’이라는 것과, ‘온전한 번제’라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왜 젖 먹는 어린 양으로 온전한 번제를 하나님께 드렸을까요? 먼저 ‘젖 먹는 어린 양’은 새끼 양 중의 새끼입니다. 아직 어리고 흠이 없는 동물입니다. 또 새끼 양은 자기 힘으로 살 수 없는 무력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젖 먹는 어린 양은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온전한 복종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버리시면 이 새끼 양처럼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전한 번제’는 하나님께 대한 철저한 신뢰와 복종의 자세를 말합니다.
10절은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라고 긴박한 상황을 말합니다. 사무엘은 블레셋 사람들이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도 예배를 중단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사무엘이 번제를 드리는 그곳까지 쳐들어 왔지만, 그때 하나님께서 큰 우레를 발하셔서 그들을 어지럽게 하셨습니다.
11절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12절은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에벤에셀’, 즉 ‘도움의 돌’이라고 부른 것은, 변하지 않는 돌처럼 하나님께서는 변하지 않은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을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은 ‘에벤에셀’에 돌을 세우고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고 선포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거기까지만 도우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더 크게, 더 많이 도우셨습니다. 13-14절은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고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의 지경을 더 넓혀주시고, 모든 원수를 막아주시며, 평강의 복을 주십니다.
사무엘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승리를 기념하여 돌을 쌓고 그것을 ‘에벤에셀’이라고 불렀습니다. ‘에벤에셀’이란 ‘도움의 돌’이라는 뜻으로,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우셨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의 도움으로 승리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도 이러한 고백이 중요합니다. 살다 보면 예상 밖의 승리를 거둘 때가 있습니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려 승승장구할 때도 있고, 병이 순조롭게 낫기도 합니다. 그런데 승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승리한 후에 어떠한 고백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습은 승리했을 때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 124:8절에서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올 한 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도우셨습니까? 어디까지 도우셨습니까? 오늘 먼저 그 은혜를 기억하고 고백하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앞날을 신실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맡기십시오. 그럴 때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벡성에게 베푸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도 있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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