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0일 주일설교 요약 | 운영자 | 2023-12-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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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나심 (마태복음 1:18-25) 오늘 성경 본문은, 마리아의 약혼자인 요셉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이 동정녀(童貞女)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실 것을 전한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예수님의 부활과 더불어 가장 믿기 어려운 기독교 교리입니다. 보편적인 자연현상과 과학적 사실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중점을 두어야 하는 것은 “어떻게”가 아니라 “왜”입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동정녀 탄생이 가능한가 하는 것이 중점이 아니라, “왜” 동정녀에게서 탄생해야 했는가 하는 것이 중점입니다. 사실 “어떻게”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고 분명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설교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이웃사촌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자라면 정식으로 결혼시켜주기로 하고, 어렸을 때 부모들끼리 미리 혼인을 약속한 것 같습니다. 마리아는 요셉에게 가서 자신이 성령으로 잉태된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19절은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라고 말씀합니다. 요셉은 율법에 따른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살고자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율법의 칼날을 휘두르는 대신, 율법의 핵심인 사랑과 용서로써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즉 마리아의 부정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결혼을 파기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20절을 보면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19절에서는 요셉이 마리아와의 관계를 가만히 끊고자 하였다고 했는데, 왜 천사는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였을까요? 요셉은 율법을 충실히 지키는 의로운 사람이라, 간음한 여인을 아내로 맞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자기가 마리아를 내치면 앞으로 마리아는 어떻게 될까? 최악의 경우에는 평생 창녀로 살아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간음한 마리아를 용납하고 데려올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무서워하다’는 뜻을 지닌 헬라어 ‘포베데스’에는 ‘주저하다’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요셉이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다 이해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24-25절을 보면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요셉은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입장을 고려하지 읺았고, 사람들의 비난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이처럼 주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24절은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다”고 말씀합니다. 요셉은 마리아를 자기 집으로 데려와서는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요셉의 씨라는 오해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21-23절을 보면, 가브리엘 천사는 태어날 아기에게 붙여질 두 가지 이름을 알려주었습니다. 하나는 ‘예수’라는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입니다. 먼저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여호수아’를 헬라어로 음역한 것인데, 히브리어 ‘여호수아’는 ‘여호와가 구원하신다’라는 뜻입니다. 또 하나의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은 히브리어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이 예수님의 구속 사역에 대한 이름이라면,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은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에 대한 이름입니다. 즉 ‘임마누엘’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죄악으로 인해 절망 가운데 있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심을 강조하는 이름입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멀리 계시는 것처럼 보이던 하나님이 우리 눈으로 볼 수 있고, 우리 귀로 들을 수 있으며, 우리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하나님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임마누엘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면 이렇게 태어나신 예수님은 어떻게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습니까? 우리의 죄를 대속(代贖)하여 죽으심으로써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죄를 대속하려면 그 자신에게 죄가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인간 가운데에는 죄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완전한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면서 완전한 사람이십니다. 예수님이 완전한 인간이셔야 하는 것은 인류를 대표하기 위함이고, 예수님이 완전한 하나님이셔야 하는 것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 앞에 나타나셨을 때, 그분은 가난한 자들, 고통당하는 자들, 세상에서 소외된 자들에게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찾아가셔서 함께 거닐고, 함께 식사하시면서 그들을 위로하시고, 참 소망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나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나를 만나주시는 하나님, 내 마음을 움직이시는 하나님, 나의 작은 신음에도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보여주시기 전에는 이런 하나님을 감히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신 예수님 때문에 '아, 하나님이 이런 분이구나!' 하는 것을 비로소 발견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멀리 보이는 하나님, 높은 곳에 계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항상 내 안에, 나와 함께, 내 곁에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알게 해주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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