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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3일 주일설교 요약 운영자 2023-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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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야고보서1:22-25절 개역개정

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들음과 행함 (야고보 1:22-25)

 

신약성경에는 야고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네 명 등장하는데, 본서를 기록한 야고보는 예수님의 친동생인 야고보입니다. 그에게는 두 가지 별명이 있는데, 하나는 낙타 무릎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실천의 사도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의 수신자는 흩어져 있는 유대인 성도들입니다. 야고보서를 기록한 목적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환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격려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둘째는, 여러 곳으로 흩어져 공동체 생활을 하는 성도들을 지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시 흩어져 유대 공동체 생활을 하던 성도들은 믿음에 대해 오해하고, 말씀대로 살지 않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야고보는 그런 상황에 대한 보고를 접하고, 그들에게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줄 필요를 느껴 본서를 기록한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27권의 신약성경 중에서 가장 늦게 정경으로 인정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야고보서에 대한 오해 때문이었습니다. 로마서의 주제가 이신칭의(以信稱義), 믿음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는다라는 것이라면, 야고보서의 주제는 이행칭의(以行稱義), 행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는다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의 주장과 야고보의 주장은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모순되는 것이 아니고 서로 보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신칭의,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한 것은 일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잘못된 주장에 반박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일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예수님을 믿었더라도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만 완전한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적인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그리고 인간적인 노력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이신칭의론을 오해한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들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면 행위는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이기에 죄를 범하더라도 구원이 취소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말한 이신칭의론을 오해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율법적인 행위로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한 것이지, 일반 행위를 부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초대교회에서 싹트기 시작한 이러한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 이행칭의’(以行稱義)를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야고보가 말한 행위는 율법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야고보는 율법을 지켜야 의롭다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는 단 한 번도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받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야고보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다만 그 믿음이 예수님을 믿습니다라는 입술의 고백만으로 그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만일 우리가 진정으로 믿는다면, 그 믿음의 증거가 반드시 실천적인 삶을 통해서 나타나야만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만일 믿음의 증거가 실천적인 삶을 통해서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거짓 믿음이요, 죽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바울과 야고보의 사상은 둘 중 하나는 버려야 하는 양자택일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바울은 주로 기독교적 믿음을 옹호하고 유대교적 행위를 비판한 반면, 야고보는 주로 유대교적 믿음을 비판하고 기독교적 행위를 옹호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기독교적인 믿음을 강조한 것이고, 야고보는 기독교적인 행위를 강조한 것입니다. 바울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예수를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것을 말한 것이고, 야고보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당연히 사랑의 행위가 나타내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따라서 두 강조점은 모순이 아니라 서로 보완적인 것입니다.

 

22절은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야고보를 통하여 참된 믿음, 살아 있는 믿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신앙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려 주십니다. 그 핵심적인 말씀이 바로 22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 받았다, 말씀이 좋았다. 감동이 되었다 라고 하는 성도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은혜받은 말씀, 좋았다고 하는 말씀, 더 나아가 감동이 되었다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는 사람의 문제는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듣고 많이 알면, 마치 자신을 믿음이 좋은 사람, 신앙이 좋은 사람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많은 교인들이 말씀을 듣고 감동받고,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행함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들은 말씀대로 행하지 않기에 삶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듣기만 하여 자기를 속이는 것입니다.

 

23-24절은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거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하면 이렇습니다. 둘째로, 말씀을 깊이 묵상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합니다. 묵상이란 들은 말씀을 반복해서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말씀이 내 영혼의 양식이 됩니다. 감동받고,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말씀대로 자신을 고쳐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능력이 그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25절에서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습니까? 여전히 내 생각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탄이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고 행하면 망하고 실패한다고 부정적인 마음을 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때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복과 자유를 누리는 삶을 살도록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말씀에 따라 행하려는 '마음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비록 모든 말씀에 늘 순종하지는 못하더라도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깊이 묵상하면, 하나님께 순종할 힘을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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