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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11월 19일 주일설교 요약 | 운영자 | 2023-11-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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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사기13:1-7절 개역개정1.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시니라 2.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에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더니 3.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4. 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5.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6. 이에 그 여인이 가서 그의 남편에게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 내게 오셨는데 그의 모습이 하나님의 사자의 용모 같아서 심히 두려우므로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내가 묻지 못하였고 그도 자기 이름을 내게 이르지 아니하였으며 7. 그가 내게 이르기를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부터 그가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하더이다 하니라 삼손 이야기(1) (사사기 13:1-7) 삼손은 사사기에 등장하는 열두 번째 사사이자 마지막 사사입니다. 우리는 삼손의 이야기를 단순한 영웅담으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그는 한편으로는 여전히 많은 실수를 하며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형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죽음으로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땅에 정착한 이후, 계속적으로 주변 이방인들에게 지배와 압박을 받아왔습니다. 사사기 말기에는 블레셋 사람들의 세력이 급속히 증대함으로써 이스라엘을 위협했습니다. 블레셋이란 이름은 히브리어 ‘필리스티아’에서 기인하는데, 로마어로 ‘팔레스타나’로 되었다가 오늘날에는 영어로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이 보편적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불임의 여인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아이를 낳게 되는 이야기는 성경에 여러 번 나오지만, 삼손의 탄생이 특별한 이유는 부모의 청이 없이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행동하신 점입니다. 또 지금까지의 사사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고통 가운데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구원자로 보내주셨지만, 삼손의 경우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부르짖지도 않았음에도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자로 보내주셨다는 점에서도 특이합니다.
‘삼손’은 히브리어로 ‘작은 태양’ 또는 ‘태양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삼손은 모태에서부터 나실인으로 선택되었습니다. 나실인은 히브리어 ‘나자르’를 음역한 것인데, ‘바쳐진 자’ 또는 ‘헌신한 자’라는 뜻입니다. 삼손은 특별한 사명을 부여받고 태어난 아이였습니다. 종종 소명(召命)과 사명(使命)을 혼돈하는데, 이 둘은 다른 의미입니다. 소명은 영어로 ‘콜링(calling)’이라고 하는데,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사명은 영어로 ‘미션((mission)’이라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구체적인 임무를 말합니다. 삼손은 나실인라는 ‘소명’을 받았는데, 그의 ‘사명’은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삼손이 블레셋 사람의 딸과 결혼하려고 부모와 상의하자, 삼손의 부모는 당연히 그 결혼을 반대했습니다. 그러자 삼손은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을 히브리어 성경에서 보면 “그 여자가 나를 즐겁게 하므로 ”라는 뜻입니다. 즉 삼손은 그 여인의 신앙 상태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안목과 육신의 정욕을 충족시켜 줄 만한 그 여인의 외모에만 매료당하여 결혼을 고집한 것입니다. 우리는 삼손의 비극적인 결말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가 몰락의 길을 재촉한 것은 계속 외모에 이끌려 블레셋의 여인들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삼손은 결혼식 과정에서 핑계를 만들어 블레셋 사람들을 무찌르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아스글론에 내려가 블레셋 사람 30명을 쳐 죽였습니다. 또 여우 300마리를 붙들어 꼬리를 서로 묶어 불을 붙여 블레셋 사람들의 곡식 밭을 다 태워버렸습니다. 이에 화가 난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을 잡으려고 가득 몰려왔습니다. 그러자 그들을 두려워한 유다 사람들은 삼천 명을 동원하여 삼손을 결박하여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겨 주었습니다.
그런데 삼손이 힘이 없어서 그들에게 결박당한 것이 아닙니다. 삼손은 어떤 경우에도 동족과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는 순순히 결박당하여 원수들에게 넘겨졌습니다. 이 모습은 동일하게 동족들에게 결박당하여 빌라도에게 넘겨지신 예수님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천군 천사를 동원하실 수 있었지만,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삼손이 결박당한 채로 블레셋 사람들에게 블레셋의 본거지에 이르자, 블레셋 사람들이 환호를 지르며 나왔습니다. 그때 다시 ‘여호와의 영’이 갑자기 삼손에게 임했습니다. 그러자 삼손을 결박했던 밧줄이 불에 탄 것처럼 떨어져 나갔습니다. 삼손은 나귀 턱뼈를 보고 손에 집어들고, 그것으로 블레셋 사람 일천 명을 죽였습니다.
삼손은 블레셋 사람 일천 명을 죽인 후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천 명을 죽였도다”고 노래했습니다. 이것은 교만한 마음으로 자기 힘을 자랑한 것이 아니라, 삼손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삼손은 자신의 승리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 돌린 것입니다.
그런데 삼손이 블레셋 사람 일천 명을 죽인 사건은 삼손의 괴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삼손의 인간적인 한계를 보여줍니다. 블레셋 사람 일천 명과 상대하여 싸운 삼손은 지치고 갈증이 나서 기진맥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삼손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사사기 15:18-19절은 “삼손이 심히 목이 말라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 하니, 하나님이 레히에서 한 우묵한 곳을 터뜨리시니 거기서 물이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 불렀으며, 그 샘이 오늘까지 레히에 있더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엔학고레’는 “부르짖는 자의 샘”이라는 뜻입니다.
갈증으로 인하여 죽음 직전에 이른 삼손은, 자칫 교만해지기 쉬운 상황에서 오직 하나님께 의지하는 자만이 참삶을 얻는다는 진리를 더욱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삼손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인한 위대한 구원의 체험을 상기함과 동시에 자신의 무능함을 고백하며 겸손히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죽음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을 더욱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삼손은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을 간구한 것입니다.
우리도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영적으로 번아웃(burnout)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믿음이 약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연약한 인간이기에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번아웃된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겸손하고 솔직하게 하나님께 내가 번아웃되었음을 고백하고 도와달라고 부르짖으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영혼을 소생시켜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로 인해 블레셋 사람들은 물러가게 되었고, 삼손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20년간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삼손의 힘은 막강한 블레셋의 군사력으로도 통제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영, 성령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했기 때문에, 그 어떤 세상적인 힘으로도 삼손의 힘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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