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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20일 주일설교 요약 운영자 2023-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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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발산에 쌓은 제단 (여호수아 8:30-35)

 

오늘 본문은 그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산에 한 제단을 쌓았으니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그때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이성을 점령한 직후입니다. 여호수아는 왜 아이성을 점령한 직후, 백성들을 인솔하여 이틀 길을 가서 에발산에다 제단을 쌓았을까요?

 

여리고성을 정복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내친김에 아이성까지 쳐들어갔습니다. 여리고성에 비하면 아이성은 작은 성이었습니다. ‘그래서 60만 명의 군사 가운데 3천명의 군사만 내어 보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한 패배였습니다. 이렇게 참담한 패배를 하게 된 것은 그들의 자만 때문이었습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후에, 이스라엘은 승리에 도취하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아이성의 첫 번째 전투에서 패한 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 나아가 엎드렸습니다. 그들은 옷을 찢고 티끌을 뒤집어쓰면서 자만했던 죄를 회개했습니다. 자신들의 자만으로 인하여 뜻밖의 패배를 경험하고 하나님께 회개한 이스라엘은, 두 번째 전투에서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매복 작전을 사용하여 아이성을 쉽게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아이성의 전투에서 승리한 여호수아는 북쪽으로 48km 떨어진 에발산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갔습니다.

 

이것은 전술적으로는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리심산과 에발산의 계곡 지대를 지날 때, 가나안의 연합군이 포위하고 매복하여 있다가 공격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세겜 땅의 에발산까지 가서, 그곳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제단을 쌓았습니다. 그것은 아이성의 패배와 승리를 통하여 예배가 곧 성공이며, 하나님의 백성에게 예배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 전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관계임을 깨달았습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은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거짓 신들과 싸우시는 영적 전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전쟁의 와중에 싸움에 지친 백성들을 이끌고 에발산으로 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제단을 쌓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배가 목적이라면 가까운 곳에서 제단을 쌓아도 될 텐데, 왜 위험을 무릅쓰고 에발산까지 가서 제단을 쌓았을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일찍이 모세를 통하여 신명기 27:4-5절에서 너희가 요단을 건너거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돌들을 에발산에 세우고, 그 위에 석회를 바를 것이며, 또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 곧 돌단을 쌓되, 그것에 쇠 연장을 대지 말지니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을 건너자마자 에발산으로 가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성의 패배를 경험한 후에야 그 명령을 지키기 위해 에발산으로 갔습니다. 패배를 경험하고 나서야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난 것입니다.

 

세겜 땅에는 에발산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심산도 있었습니다. 이 두 산은 서로 마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심산은 나무가 많고 아름답습니다. 반면에 에발산은 거의 황폐하다시피 한 돌산입니다. 그래서 에발산이라는 이름은 벌거벗은 산이라는 뜻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임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은 그리심산 앞에 서고, 나머지 절반은 에발산 앞에 서게 한 후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 대로 축복에 관한 것과 저주에 관한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습니다. 그리심산에서는 축복을 선포하고, 돌무더기가 가득한 에발산에서는 저주를 선포했습니다. 이 두 산이 축복과 저주라는 상징적인 메시지를 주기에 적합한 산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제단을 쌓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에발산에서 저주를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저주가 선포된 에발산에 제단을 쌓으라고 하신 것은, 어느 누구도 율법의 저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제단이 필요함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에발산의 제단에서 번제와 화목제가 드려졌습니다.

 

에발산의 제단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한 예표와 모형이었습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 에발산의 제단이 필요했듯이,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는 아무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대속의 피가 필요합니다. 그 피를 의지하는 사람은 결코 정죄를 당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생명이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에발산은 저주의 산이 아닙니다. ‘은혜와 회복의 산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3:13-14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대신 받으시고, 또 죄로 인해 마땅히 죽어야 할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단순히 복을 받기 위한 것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목적이라면, 에발산이 아니라 그리심산에 제단을 쌓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예배하는 목적은 복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과 다시 화목하게 되도록 십자가에서 번제물과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에발산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저주 아래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어린 양의 피의 공로로 다시 하나님과 화목을 회복하는 자리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십자가 밑에 나아가 드리는 예배가 여호수아가 에발산에서 제단을 쌓고 드린 번제와 화목제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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