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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7월 23일 주일설교 요약 | 운영자 | 2023-07-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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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네시모를 위한 간구 (빌레몬서 1:8-21) 빌레몬서는 바울의 옥중서신 네 권 중 마지막 책입니다. 그런데 앞의 세 권의 옥중서신이 교회에 보내 편지인 것과 달리, 빌레몬서는 골로새교회의 성도인 빌레몬에게 보낸 개인적인 편지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레몬서를 기록하게 된 동기는, 노예 신분인 오네시모를 위해서입니다.
빌레몬서에는 세 인물이 등장합니다. 첫째는, 빌레몬서를 기록한 ‘사도 바울’입니다. 둘째는, 빌레몬서의 수신자인 ‘빌레몬’입니다. 셋째는 ‘오네시모’입니다. 이들 세 사람은 남남이었고, 서로 교제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관계였습니다. 첫째로, 바울은 유대인이고 빌레몬은 이방인입니다. 둘째로, 바울은 바리새인이고, 오네시모는 노예입니다. 셋째로 빌레몬은 상전이고 오네시모는 그의 노예였습니다.
인간관계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러했습니다. 바울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습니다. 또 빌레몬과 오네시모는 에베소서 2:12절의 표현을 따르면,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은 지금 현재 어떤 상태에 있습니까? 박해자였던 바울은 자신이 대적하던 복음을 증언하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로마 감옥에 있습니다. 빌레몬은 바울을 통해서 복음을 듣고 구원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도망친 노예 신세였던 오네시모는 감옥에서 사도 바울을 만나 복음을 듣고,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로 신분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빌레몬서에서 세 사람을 하나로 묶어주고 있는 공통분모와 같은 한 분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분은 25절에 불과한 빌레몬서에서 11번이나 강조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빌레몬서에는 “그리스도 안에서”가 두 번, “주 안에서”가 두 번, “그리스도 예수 안에”가 한 번,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가 다섯 번이나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세 사람은 모두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만일 등장하는 세 사람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았다면, 빌레몬서는 기록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두 가지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8-14절은 바울이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는 이유를 말한 것입니다. 둘째로, 15-22절은 바울이 오네시모를 위해 빌레몬에게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먼저 사도 바울이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바울은 1절과 9절에서 자신을 소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된 바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10절에서는 오네시모를 “갇힌 중에서 나은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 있는 동안에 오네시모를 만났습니다. 아마도 오네시모는 도둑질을 하다가 붙잡혀 왔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런 오네시모에게 복음을 전해, 그가 새사람이 되도록 인도했습니다. 그래서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난 오네시모는 모두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었고, 특히 감옥에 갇혀 있는 사도 바울에게는 꼭 있어야 할 인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가 주인 몰래 도망쳐 나온 노예였기 때문에 일단 주인에게 돌려보내되, 주인의 허락을 받고 오네시모가 다시 자기 곁으로 올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편지를 쓴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세 가지 요점을 질문 형태로 점검해보겠습니다. 첫째로, 바울은 왜 오네시모를 돌려보내야만 합니까? 둘째로, 오네시모는 왜 빌레몬에게 돌아가야만 합니까? 셋째로, 빌레몬은 왜 도망친 노예인 오네시모를 형제로 영접해야만 합니까? 빌레몬서는 이 세 가지 질문을 통해서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고 있는가”를 점검하게 합니다.
첫째로, 만일 빌레몬이 “이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는 바울의 간구를 거절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의 ‘사랑’은 말뿐임이 드러나고 말 것입니다. 또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라”는 바울의 요청을 거부하면, 그의 믿음 또한 거짓임이 드러나고 말 것입니다. 둘째로, 오네시모가 빌레몬을 두려워하여 다른 길로 도망했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의 회개는 진정한 회개가 아니며, 그의 신앙고백 또한 거짓이라는 것이 입증되고 말 것입니다. 셋째로, 바울이 도망친 노예를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 돌려보내지 않고 끼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바울에게 걸려 있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이름과 그가 증언하는 복음의 빛을 가리고 누를 끼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친필로 쓰노니”라고 한 빌레몬서를 그에게 주고, 이를 가지고 돌아가게 했습니다. 그러면 친필로 쓴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겠다”는 보증입니다. 오! 우리가 하나님께 불의를 행한 것과 빚진 것에 대해서 “내가 대신 갚겠습니다”라고 하신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십니다. 디모데전서 2:6절은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고 말씀합니다.
만일 빌레몬서에 “내가 갚겠다”는 말씀이 없다면, 이는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셨다”는 말씀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빌레몬서에서 ‘바울’은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변자로 등장하고, ‘빌레몬’은 모든 사람을 받아주어야 하는 ‘교회’를 예표하고, ‘오네시모’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할 모든 ‘죄인’의 모형으로 등장합니다. 회개하고 돌아가고 있는 오네시모의 모습은 탕자의 모습이요, 바로 나 자신의 모습입니다. 그런가 하면 누군가를 받아주지 못하고 괴로워하고 있는 또 다른 나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오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받아주어야 할 우리의 오네시모는 누구입니까? 주님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라”고 빌레몬서를 통해서 간곡히 부탁하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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