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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3월 19일 주일설교 요약 | 운영자 | 2023-03-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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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이 되는 교회 (데살로니가전서 1:1-10) 데살로니가전서는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에 보낸 두 개의 편지 중에서 첫 번째 편지입니다. 바울은 2차 전도여행 중 고린도에서 1년 반을 머무는 동안, 데살로니가 교회의 어려운 형편을 전해 듣고 이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성경에서는 현재 그리스의 북부 지역을 ‘마게도냐’라고 하고, 그리스 남부 지역을 ‘아가야’라고 하는데, 데살로니가는 바울 당시에 마게도냐 지방의 수도인 큰 항구 도시였습니다.
당시에 약 20만의 인구를 가진 항구 도시 데살로니가는 바울이 사역하기에 알맞은 곳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에는 유대인의 회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선교 전략은 먼저 유대인의 회당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였지만, 자기 민족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의 회당에서 세 안식일 동안, 성경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관해 가르쳤습니다. 3주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데살로니가에 엄청난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시기와 핍박으로 인해, 바울 일행은 급히 베뢰아 지역으로 탈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과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던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베뢰아까지 따라가서 바울을 핍박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베뢰아에서 아테네로, 그리고 아테네에서 다시 고린도로 갔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회가 여전히 그의 마음에 남아 있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의 심한 핍박 중에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데살로니가교회에는 바울에 대해 오해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또 데살로니가교회에는 주님의 재림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첫째로 환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 격려하기 위해서, 둘째로 바울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서, 셋째로 예수님의 재림에 관해 바르게 이해하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권면하기 위해서 이 편지를 쓴 것입니다. 이런 배경을 알고, 오늘 설교 본문인 데살로니가전서 1장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1절은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실루아노는 바울의 동역자인 실라의 로마식 표기입니다. 1절에서 바울은 특유의 인사를 전합니다.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는 것인데, ‘평강’은 히브리어 ‘샬롬’에 해당하는 말로서, 유대인의 일반적인 인사였습니다. 또 ‘은혜’는 헬라어로 ‘카리스’라고 하는데, 헬라식 인사였습니다. 바울은 이 두 가지를 자기 방식으로 결합하여 새로운 인사말을 만들었습니다. 즉 하나님이 주시는 주권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복음에 따르는 환난 가운데도 평안함을 누리게 되었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2-3절은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특히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믿음의 역사(役事)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끊임없이 기억한다고 말했습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 이 세 가지는 바울이 생각하는 ‘기독교의 핵심 가치’였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행했던 여러 가지 일을 기억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때문에 기꺼이 감내했던 온갖 수고를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주님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고 소망하며 인내했던 모습을 기억했습니다.
4절은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택하심과 사랑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정말 택하셨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다만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선택된 사람들에 합당한 삶을 살았기에, 그렇게 인정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5절은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의 복음 전파 사역은 말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었습니다.
6절은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라고 말씀합니다.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은 바울이 떠난 이후에도 줄곧 박해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성령 하나님께서 그러한 박해를 극복할 만한 기쁨을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과 바울 일행을 본받아 그 모습대로 살아갔습니다.
7-8절은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임하여 믿음의 반응을 일으키고, 그 신선한 반향을 목격한 사람들의 연쇄적인 결단을 낳았습니다.
9-10절은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1장의 결론이자, 복음의 핵심 주제를 다룹니다.
복음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가도록 만듭니다. 이것이 ‘믿음의 역사’입니다. 바울 시대에는 핍박과 시기 속에서도 믿음의 역사를 이루어 갔다면, 우리 시대에는 세상의 유혹과 물질 속에서 믿음의 역사를 이루어 가야 합니다. 또 복음은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게 합니다. 이것이 ‘사랑의 수고’입니다. 또 복음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도록 만듭니다. 이것이 ‘소망의 인내’입니다. 교회와 성도들은 복음을 받들어 이 세 가지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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