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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7일 주일설교 요약 운영자 2022-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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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아모스 5:21-24)

 

오늘 설교 본문은 아모스서입니다. 아모스는 호세아 선지자와 동시대 사람입니다. ‘아모스라는 이름은 짐을 지는 자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은 인생의 무거운 짐을 가리킬 수도 있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막중한 사역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점에서는 우리 모두가 아모스입니다. 우리 모두는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진 자인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 막중한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모스서는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2장에서는 열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3-6장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리고 7-9장에서는 다가올 심판에 대한 다섯 개의 환상을 기록합니다.

 

아모스서 1:1절은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상으로 받은 말씀이라고 시작합니다. 이즈음 남왕국 유다는 군사적,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도 정치, 경제, 군사적인 안정을 누리며 살고 있었습니다. 특히 여로보암 2세는 솔로몬 시대에 지배했던 국경에게까지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상업과 무역을 발전시켜 풍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북왕국 이스라엘은 풍요로 인하여 더욱 형식적인 종교로 전락했고 부도덕과 사치와 물질 만능주의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착취가 자행되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부()는 그들로 하여금 사치와 우상숭배에 빠지게 했고, 도덕적 타락의 원인이 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종교적 상황은 사회적 도덕적 상황보다 더 심각했습니다. 바알 종교의 영향과 이스라엘 종교의 형식적인 예배로 종교 생활은 크게 부패하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북 이스라엘 사람들은 종교적으로 대단한 열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께 드린 것들은, 정성을 다해 준비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착취한 것들이었습니다.

더욱 나쁜 것은, 자기들의 열심 있는 종교 활동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형식화된 종교적인 열심이 아니라, 삶의 예배입니다. 이 말씀은 예배만 열심히 드리면 신앙의 의무를 다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스라엘 백성과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겉치레적인 예배나 제사의식이나 찬양보다는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식을 앞세운 예배보다는, 정의가 구현되는 삶에서부터 하나님을 섬겨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여로보암 2세 시대의 북 이스라엘의 번영은 사회 구조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농촌사회에서 도시사회로 바뀌면서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었습니다.

상류층에 속한 사회 지배자들은 사치를 누린 반면, 하층 계급의 빈민들은 착취를 당하여, 결국 적은 돈에 종으로 팔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아모스 당시의 사회는 착취하는 자와 착취를 당하는 자, 둘로 나누어진 사회였습니다.

부유한 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힘없는 자들을 착취하여 본인의 배를 불렸습니다. 또 장사꾼들은 저울을 속이고 되박을 속여서 부당한 이득을 취하였습니다. 또 당시 사회는 정의가 결핍되어, 재판관들은 뇌물을 받고 부당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재판관들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5:10절에서는 무리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는도다라고 당시의 왜곡된 사회상을 고발했습니다. 당시 사회는 총체적으로 바르게 말하는 것을 싫어했다는 것입니다.

아모스서는 특별히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1-2장에서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이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 가운데 어떻게 행하여지는지 말하였고, 3-6장에서는 공의의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부터 피할 수 없는 이스라엘의 죄들을 고발하였습니다. 호세아 선지자와 아모스 선지자는 동일하게 북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해 선고하였는데, 호세아 선지자가 북이스라엘의 종교적인 죄악, 즉 우상숭배에 대해 중점적으로 지적하였다면, 아모스 선지자는 북이스라엘의 사회적인 죄악, 즉 정의와 공법이 시행되지 않는 것에 대해 중점적으로 지적했습니다. 그래서 두 선지자의 메시지는 상호보완적입니다.

그런데, 호세아서와 마찬가지로 아모스서 역시 하나님의 심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아모스서는 회복의 말씀으로 마칩니다(9:13-15). 이것은 다른 소선지서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입니다.

 

아모스의 경우에서처럼, 비교적 배우지 못하고, 유리한 점들도 별반 없었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큰 사업을 위한 부르심을 받았을 때, 고린도후서 4:7절의 말씀대로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않음이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사람을 적합하게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이 무엇을 소유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람됨이 어떠하냐에 달려 있습니다.

아모스서는 하나님을 떠난 국가에 대한 하나님의 준엄하신 심판의 경고가 주제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과 생활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부분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의 예언으로 끝을 맺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 사역과는 전혀 상관없는 직업에 종사하던 사람이었던 아모스를 '양의 뒤를 따르는 데서' 불러내어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역을 맡기셨습니다. 즉 그의 예언 사역은 오직 주권적인 하나님의 뜻과 부르심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와 같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 가운데도 아모스처럼 하나님께 부름을 받고 쓰임을 받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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