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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7월 31일 주일설교 요약 | 운영자 | 2022-07-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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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 (누가복음 19:1-10) 오늘 설교 본문은 소외된 한 인간과 그를 찾아가 구원하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은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길에 여리고를 지나가셨다는 것입니다. 여리고는 종려나무가 많아 ‘종려의 성읍’이라 불리며,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비옥한 땅으로 천연자원이 풍부한 곳이었습니다. 또 이스라엘 북부의 주요 해안 도시와 남쪽 애굽을 이어주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막대한 재물이 모이는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여리고는 팔레스타인 땅에서 가장 많은 세금을 내는 곳이었습니다.
2절은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고 말씀합니다. 삭개오는 여리고의 막대한 자금을 관리하는 세리장이었습니다. 삭개오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자카이’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깨끗하다” 또는 “순결하다”는 것입니다. 세리장은 로마 정부가 관장하는 지역 이곳저곳에 설치된 세금 징수처를 관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은 부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겼지만, 부자인 세리는 경멸했습니다. 유대 사회에서 가장 소외당하고 경멸하던 대상이 세리였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에 세리는 로마제국을 위해 세금을 거두었고, 정해진 액수 이상을 거두며 자신들의 몫을 챙겼기 때문입니다.
3-4절은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고 말씀합니다. 삭개오의 마음속에는 결코 돈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어떤 갈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예수님이 어떠한 사람인가 보기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가로막는 두 가지 장애물이 있었으니, 하나는 수많은 군중이요, 다른 하나는 자신의 작은 키였습니다. 사람들에게 막혀 예수님을 볼 수 없자, 삭개오는 앞으로 달려가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기 원했습니다. 누가는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기 원했다”고 두 번 반복하여 기록합니다.
5절은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 먼저 예수님이 그를 영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무에 숨은 사람이 정확히 누구인지 아셨으며, 간절히 예수님을 보기 원했던 그의 마음을 아시고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삭개오의 측면에서 보면, 갑작스럽고 놀라운 사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측면에서 보면 이미 주님께서 계획하셨던 일이며, 하나님의 구원 계획 중 하나였습니다. 인자(人子)이신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6절은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삭개오는 급히 나무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는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영접했습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 앞에 그는 온 마음으로 주님을 영접한 것입니다.
7절은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죄인들의 특징을 봅니다. 죄인들은 서로 차별합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하나도 없는데, 죄인들은 자기들 사이에 구분을 두고 내가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을 의롭다고 하시는 것을 부당하게 여깁니다.
8절은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삭개오의 고백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변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주님께 새로운 삶을 향한 자기의 결심과 의지를 봐달라고 요청합니다. 삭개오는 이제 그 이름대로 순결하고 깨끗한 삶을 살기 원합니다.
9절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삭개오가 구원을 얻었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삭개오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유대인은 혈통으로 아브라함 자손이라는 것을 자랑했지만, 참 아브라함 자손은 단지 혈통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자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믿음은 삭개오처럼 그 결과로서 변화된 삶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이것이 참된 거듭남의 결과입니다.
10절은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인자(人子)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삭개오가 주님을 만나 변화된 이 사건에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핵심적인 진리는 “잃어버린 사람의 구원”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죄인을 부르시고 찾으시고 구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배웁니다. 둘째, 죄인을 향한 그리스도의 긍휼과 자비를 배웁니다. 셋째, 그 자비하심을 맛본 자, 진정 거듭난 자가 어떤 삶의 변화를 보이는지 배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죄인을 바라보고, 그들에게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줄 책임과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결국 잃어버린 나를 찾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또 다른 잃어버린 자에게 소개해주는 것입니다. 전도는 다른 게 아닙니다. 잃어버린 자였던 나를 찾아 구원하신 내 영혼의 구세주를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누구도 그 어떤 자들도 우리 가운데 소외시켜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가 바로 삭개오며, 그가 바로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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