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2년 7월 24일 주일설교 요약 | 운영자 | 2022-07-23 | |||
|
|||||
|
마음을 찢고 돌아오라 (요엘 2:12-13)
요엘서 1:1절은 “브두엘의 아들 요엘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말씀합니다. ‘요엘’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요엘은 호세아와 동시대에 활동한 선지자였습니다. 다만 호세아가 북이스라엘 출신으로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한 반면, 요엘은 남유다 출신으로 남유다에서 활동했습니다. 요엘서 1:2절은 “늙은 자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지어다. 땅의 모든 주민들아 너희는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의 날에나 너희 조상들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늙은 자들’은 백성의 지도자들인 장로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땅의 모든 주민들’은 남유다의 모든 백성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요엘은 “너희의 날에나 너희 조상들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이것은 요엘이 메시지를 선포한 동기가 어떤 특별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건이 발생했습니까?
요엘서 1:4절은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라고 말씀합니다. 당시 아프리카 북부와 근동 지방에 가끔 나타난 공포의 메뚜기 떼는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여, 클 때는 사방 32Km에 이를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하늘과 땅을 시커멓게 덮은 죽음의 군단이 전진하면서 모든 곡식의 씨를 말려 버렸습니다. 그 어떤 군대나 인간의 지혜로도 메뚜기 재앙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메뚜기 재앙은 가깝게는 다가올 앗수르의 침입을 예고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종말에 있을 인류 최후의 심판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요엘서의 핵심적인 낱말은 ‘여호와의 날’입니다. 세 장에 불과한 요엘서에 모두 다섯 번이나 ‘여호와의 날’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그러면 ‘여호와의 날’은 어떤 날입니까? 발등에 떨어진 ‘여호와의 날’은 메뚜기 재앙입니다. 그런데 1:6.7절은 “다른 한 민족이 내 땅에 올라왔음이로다. 그들은 강하고 수가 많으며,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고, 그 어금니는 암사자의 어금니 같도다. 그들이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내 무화과나무를 긁어 말갛게 벗겨서 버리니, 그 모든 가지가 하얗게 되었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다른 한 민족’은 이방 민족인 앗수르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내 포도나무’와 ‘내 무화과나무’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유다를 가리킵니다. 즉 요엘 선지자는 메뚜기 재앙을 통해서 대적 앗수르의 침략을 내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가까운 미래에 있을 ‘여호와의 날’입니다.
그런데 궁극적인 ‘여호와의 날’은, 2:31절에서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라고 한 종말론적(終末論的)인 ‘여호와의 날’입니다. 이 날은 주님께서 누가복음 21:35절에서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고 하신 최후심판의 날입니다. 이처럼 요엘서에는 근경(近景)과 중경(中景)과 원경(遠景)의 의 세 장면이 겹쳐있습니다. 요엘서의 전체 구조는 다른 선지서와 마찬가지로 ‘절망과 소망’, ‘문제와 해답’이 교차하는 구조입니다. 먼저 1:1-2:17절까지는 심판을 경고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2:18-32절에서는,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의 땅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그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2:18)고 하시고,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2:28)라고 하심으로써 불쌍히 여기실 것과 성령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3:10절에서는 “너희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지어다. 낫을 쳐서 창을 만들지어다”(3:10)라고 심판을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요엘서는 3:16절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시리로다”는 말씀과 3:21절 “내가 전에는 그들의 피흘림 당한 것을 갚아 주지 아니하였거니와, 이제는 갚아 주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에 거하심이니라”는 위로와 회복에 관한 소망의 말씀으로 마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요엘서는 ‘여호와의 날’이 두 가지 양상으로 임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곧 ‘구원(救援)과 멸망(滅亡)’입니다. 그러므로 요엘서를 읽으면서 두려운 심판만을 보지 말아야 합니다. 요엘서에는 그보다 더욱 큰 축복과, 구원과, 은혜가 풍성하게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2:21절에서 “땅이여, 두려워하지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음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큰일을 행하셨다”는 말씀을 구속사(救贖史)라는 관점에서 보면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 행하신 ‘큰 일’은 자기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대속 제물로 내어주신 일입니다. 둘째로 행하신 ‘큰 일’은 2:28절에서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라고 약속하신 성령 강림입니다.
요엘서를 요약하면, 1장의 메뚜기 재앙이, 2장에서는 외적(外敵)의 침입으로, 3장에서는 최후의 심판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 요엘서의 구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명심해야할 점은 ‘여호와의 날’이란 다가오고 있는 특정한 ‘한 날’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날(日)들이 모여 달(月)이 되고, 해(年)가 되듯이, 매일 매일이 ‘여호와의 날’이라는 각성이 필요합니다. 점(點)들이 모여서 선(線)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엘이 가장 강조하는 말은 ‘여호와의 날’(The Day of the LORD)입니다. 이 날은 많은 이들이 슬퍼하고 두려워해야 할 심판의 날입니다. 하지만 요엘서에 나오는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의 심판만 강조하지 않고, ‘여호와의 회복’도 강조합니다. 요엘은 이 ‘여호와의 날’을 준비하기 위해 모두가 철저히 회개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단호하게 죄악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만이 ‘여호와의 날’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요엘은 하나님의 심판 중에라도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엄청난 영적 축복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요엘서의 주제이자 핵심 성구는 오늘 설교 본문인 2:12-13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한국교회를 포함한 모든 현대교회를 향해서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은 아직 늦지 않았다고, 아직은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