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26일 주일설교 요약 | 운영자 | 2022-06-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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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2) (마태복음 5:7-12) 오늘 살펴볼 복은 팔복 중에서 다섯 번째에서 마지막 여덟 번째 복까지입니다. 다섯 번째 복은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입니다. ‘긍휼(矜恤)’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대하시는 마음이자 죄인을 다루시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즉 긍휼히 여긴다는 말은, 죄를 용서해 주는 것과, 고통을 당하는 자와 궁핍한 자를 동정한다는 의미를 포괄한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그리스도인들도 주위의 불쌍한 영혼을 예수님의 심장을 가지고 긍휼히 여기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즉 긍휼에 대한 보상은, 타인이 베푸는 긍휼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긍휼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베푸는 긍휼이 하나님께서 다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계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눈덩이가 구르면서 더 큰 눈덩이가 되듯이, 긍휼의 풍성함에 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 복은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입니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죄 사함을 받고, 신실한 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청결해진 마음’은,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하나님의 섭리하심과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실 것을 믿고,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없이는 어떤 영혼도 실패요 결국은 멸망에 이를 수밖에 없음을 확신하기에, 사나 죽으나, 무엇을 먹으나 마시나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받는 복은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삶속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게 되고, 하나님의 풍성한 영광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 복은 ‘화평하게 하는 자의 복’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화평’은 하나님과 죄인과의 화평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한 화평의 실현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의 대속(代贖) 사역이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먼저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이유는, 우리가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가, 세상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일을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브로더스라는 미국의 신학자는 "세상에서 화평하게 하는 일보다 더 하나님을 닮은 일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하게 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화목하게 하는 일’을 계속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우리도 작은 예수가 되어 ‘화목하게 하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교회와 성도들에게 당부하신 가장 중요한 사역입니다.
여덟 번째 복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의 복’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일곱 개의 복은 모두 한 줄로만 되어 있는데, 마지막 여덟 번째 복은 10절에서 12절까지 세 줄로 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가장 중요하고 가장 큰 복이기 때문입니다. 의에 주리거나 긍휼히 여기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표시인 것처럼, 박해를 받는 것도 예수님의 제자가 된 표시입니다. 바울이 디모데후서 3:12절에서 말했듯이, 진정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가 악한 세상에서 박해를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들이 받는 복은, 천국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박해의 시련 속에서도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의에 굳게 섰으므로, 그들에게 주어지는 큰 복은 '천국이 저희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에서 얻어지는 모든 은혜와 은사와 영광이 그들의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12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거나,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박해를 받을 때,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선지자의 반열에까지 올려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12절에서 예수님이 특별히 강조하신 것은, 박해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과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필연적으로 박해와 반대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제자들과 성도들은 전에 박해를 받았던 선지자들과 같은 계열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점에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의 핍박이 없으면, 오히려 이상하고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언제까지나 세상은 예수님과 그에 속한 자를 미워하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 미움이 싫고 힘들어서 미움을 줄이려면 하나님과 등지게 되고, 반면에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여 그 뜻대로 따르면 세상의 미움은 늘어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기쁨과 세상의 기쁨 둘 중에 어느 것을 택할지 매 순간마다 자신과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나의 신앙 상태는 어느 단계에 와 있습니까? 여러분은 이미 첫 번째 복을 누리고 있습니까? 첫 번째 복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의 복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 없이는 도저히 진홍 같은 죄가 희어질 수 없음을 절감하고, 십자가 앞에 엎드려 본 적이 있습니까?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난 후에 완전히 새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확신하며, 또 그렇게 살고 있습니까? 안타까운 사실은, 교회 안에 교인은 많아도, 팔복의 첫째 복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라는 것입니다.
팔복이 꼭 순서대로 이뤄져야 하는 법은 없습니다. 믿음이 좋은 성도도 실수하고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결코 바뀔 수 없는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처음과 마지막이 그것입니다.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을 때, 그래서 영적 성장을 시작하고자 할 때는 가난한 심령이 되지 않으면, 아예 출발 자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종착역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어주신 바로 그 분을 위해 우리의 목숨마저 기꺼이 드리는 것입니다. 현실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닙니다. 팔복은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하여 자신의 영혼이 거룩하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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