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24일 주일설교 요약 | 운영자 | 2022-04-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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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자는 (요한계시록 21:7)
요한계시록에는 ‘보좌’라는 말이 44회, ‘어린 양’이라는 말이 29회, ‘성령’이라는 말이 13회, ‘교회’라는 말이 20회 등장합니다. 요한계시록의 중심 주제는 바로 이 네 마디의 결합에 있습니다. 즉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어린 양>으로 삼으셔서 성취하신 구속사역을, <성령>이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 나가시는 것”이 요한계시록의 중심 주제인 것입니다.
먼저 요한계시록의 전체적인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계시록을 바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1장에서 주님은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는” 야전군 사령관과 같은 분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런 주님이 “오른 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서 계시는데, “일곱 별과 일곱 금촛대” 즉 ‘일곱 교회’가 바로 주님의 휘하 부대인 것입니다. 그들을 향해서 “많은 물소리와 같은 음성”으로 훈령(訓令)을 하달하시는 것이 1장의 내용입니다.
2장과 3장은 1장에 등장한 야전군 사령관인 주님께서 휘하 부대인 일곱 교회를 향해서 훈령하시는 내용인데,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2장과 3장에서 주님께서는 일곱 교회를 향해서 일곱 번이나 “이기는 자는, 이기는 자”는 하고 독려하십니다. 여기서 일곱 교회는 모든 시대의 모든 교회를 대표합니다. 그리고 “이기는 자는”이라고 일곱 번이나 계속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5:5절에서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하고, 주님께서 대표자 간의 싸움에서 이기셨기 때문에 그의 군사들도 이길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21장에서는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라고 선언하십니다. 무엇을 이루셨습니까? 21:1절에서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고 한 새로운 세상과, 21:3절에서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라고 한, 하나님이 영원히 함께 하심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21:7절에서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고 하시면서,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요한계시록의 핵심 내용입니다.
그러면 그 중간에 있는 4장에서 20장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교회와 성도들은 누구와 싸우며, 어떻게 이기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요한계시록의 전체적인 구조인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와 성도들이 싸워야할 대적은 누구입니까? 12:9절에서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한 사탄입니다. 그런데, 사탄에게는 하수인이 있는데, 하나는 적그리스도이고, 또 하나거짓 선지자입니다. 사탄과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 셋을 가리켜서 ‘사탄의 삼위일체’라고 합니다.
20:1-6절은 마지막 때에 역전(逆轉)의 날이 이르게 될 것을 보여줍니다. 이 대목의 중심 주제는 천년왕국설(千年王國說)이 아니라, 최후의 승리가 ‘교회와 성도들’ 특히 ‘순교자들’에게 있다는 역전(逆轉)의 광경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일차 독자가 로마정부의 박해 속에 있었던 1세기의 교회와 성도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은 실제로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하거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거나 굶주린 맹수들과 싸우다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박해 속에 있던 1세기의 독자들에게 20장의 말씀은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2,000년 전에 기록된 요한계시록이 현대교회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요한계시록의 내용들은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진행 중이며, 미래에 대단원을 이루게 될 내용입니다. 예를 들면, 사탄은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또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 역시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장차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과의 증거의 싸움도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장차 주님 재림 직전에 있을 일들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19장에 등장하는 ‘백마를 타신 주님’은 장차 재림하실 주님이 아니라, 지금 현재 교회의 야전 사령관이 되셔서 진두에 써서 싸우고 계시는 주님을 말한 것입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인류 최후의 전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아마겟돈 전쟁’도, 실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대한 은유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에 나타난 ‘새 예루살렘’에 대한 묘사도, 문자적으로 천국을 묘사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성경 전체를 통하여 일관되게 추구해 오신 목표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라고 하신 “함께 거하심”, 즉 하나님의 나라 건설입니다. 그런데 21:3절에 이르러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하고 드디어 “함께 거하심”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으로 상징된 “진노와 심판”에 중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어린 양의 “구원하심”에 중심에 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인(印)을 떼는 것’은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고, ‘나팔을 부는 것’은 임박한 심판을 대비하라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며, ‘대접을 붓는 것’은 드디어 심판이 시행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계시록의 마지막 장에서 “속히 오리라”는 약속을 세 번이나 하셨습니다. 먼저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22;7)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22:17)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22:20)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요한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화답했습니다. 모든 성도의 소망이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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