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13일 주일설교 요약 | 운영자 | 2022-03-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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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영혼이 잘됨 같이 (요한삼서 1:2)
사도 요한이 기록한 세 번째 편지인 요한삼서는, 앞서의 요한일이서와는 달리 ‘가이오’라는 한 개인에게 보내진 편지입니다. 가이오라는 이름은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요한삼서에는 수신자인 가이오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이 글 전반에서 발견됩니다. 그래서 이 편지는 바울이 빌레몬에게 보낸 개인적인 편지인 ‘빌레몬서’와 성격상 유사합니다.
사도 요한은 이 편지에서 복음 전파를 위해 아무런 보수도 받지 않고 애쓰는 순회 전도자들과 관련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복음 전도를 위해 각지로 여행을 하며 말씀을 가르치는 순회 전도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담임 목회자가 없는 교회들을 순방하며 성도들에게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요한은 본 편지에서, 소아시아 전역에 걸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순회 전도자들을 따뜻하게 맞아들이고, 필수품을 공급해 주라고 권면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을 후원하고 격려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데 일익을 감당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교회에서는 이런 순회 전도자를 영접하지 않고 배척하며, 심지어는 사도 요한까지 비방하고 대적하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본서에서는 그러한 사례의 대표적 인물로 ‘디오드레베’라는 자의 악행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는 순회 전도자를 영접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순회 전도자를 대접하려는 사람까지도 교회에서 내어 쫓는 악행을 서슴지 않음으로써, 교회 내부의 질서를 파괴하고 교회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가이오에게 그와 같은 자를 본받지 말고, ‘데메드리오’와 같은 사람을 본받아 선을 행하고 진리 가운데 거할 것을 권면하면서, 교회의 내적 혼란과 무질서를 막기 위해 본서를 기록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요한삼서 1:2절은 유명한 성경 구절입니다. 조용기목사님은 이 구절을 근거로 하여, ‘삼박자 구원’이라는 순복음교회 특유의 교리를 만들었습니다. ‘삼박자 구원’을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으면, 육체가 강건하고, 영혼이 구원받으며, 물질적인 축복도 받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순복음교회에서는 ‘삼박자 구원’이라는 말은 1960년대에 조용기목사님이 전인구원(全人救援)에 대한 메시지를 전할 때, 일반인들이 알아듣기 쉽도록 표현한 것이며.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즉, 물질이나 축복은 60년대의 못 먹고 못 살고 헐벗고 굶주린 민중들을 대상으로 해서 나온 설교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영혼 구원을 최우선적으로 강조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저는 요한삼서 1:2절은 논리적인 순서를 말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영혼이 구원받은 사람은 반드시 물질적으로도 축복을 받고, 육체적으로 건강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언제나 영적인 것이 우선적이며, 육체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은 2차적인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선적인 관심사가 영적인 것에 있다는 것은, 창세기 3장의 창조 기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3장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두려워하여 숨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숨는 것을, 신학적으로 ‘영적인 사망’이라고 합니다. 즉 영적인 사망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된 상태를 말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사망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영적인 사망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육체적인 사망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수명이 다하여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영원한 사망입니다. 이것은 지옥에 가는 것인데, 하나님의 은혜가 전혀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멀쩡하던 나무가 갑자기 쿵 하고 쓰러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땅을 파보면 뿌리가 썩어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육체가 나무라면 영혼은 그 나무의 뿌리입니다. 그 뿌리의 상태에 따라서 나무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처럼, 영혼의 상태에 따라서 육체의 상태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축복합니다. “네 영혼이 잘된 같이”라고 한 것을 보면, 가이오는 신앙생활을 잘한 사람 같습니다. 그런데, 부자이거나 건강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그의 영혼이 잘됨을 전제로,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축복합니다.
만일 영혼이 잘되지 않은 상태에서 물질적으로 풍요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 풍요로움으로 오히려 사치하고 방탕하며 죄를 범하는데 사용하지 않겠습니까?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몸이 건강하면 오히려 더 많은 죄를 짓습니다. 영혼이 잘되지 못한 사람의 형통과 건강은 무익한 결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그러므로, 물질적인 축복과 육체의 건강을 구하기 전에 먼저 여러분의 영혼이 잘되기를 기도하십시오. 여기서 영혼이 잘된다는 것은 영혼의 상태가 건강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 모두 건강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물질적으로도 안정된 생활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이 건강해서 우리의 육신도 건강하길 원하시고, 세상에서도 잘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조용기목사님이 말하고자 했던 전인구원이며, 삼박자 구원입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중심점은 영혼이 잘되는 것, 즉 영혼 구원에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는, 환경에서 다가오는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건강해져서 영혼이 잘 되면, 모든 문제가 다 풀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물질의 문제든, 건강의 문제든, 인간관계의 문제든, 영혼이 건강해지면 다 풀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영혼의 문제, 즉 신앙생활이 우선하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영혼이 잘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늘 가까이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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