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7일 주일설교 요약 | 운영자 | 2022-02-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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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敵)그리스도에 대한 경고 (요한이서 1:7-11) 요한이서는 요한일서의 축소판으로서 요한일서 내용을 보충할 목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즉, 요한일서와 마찬가지로 사랑의 실천을 역설한 후, 교회 내에 침투해 들어온 영지주의(靈知主義) 이단에 대해 경계할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들을 가리켜 ‘적(敵)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영지주의에는 여러 계통의 파가 있었는데, 그들 중 당시 교회에 가장 위협이 되었던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에 대한 부인이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육체적인 것은 악하다는 헬라철학의 이원론(二元論)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을 부인했습니다. 요한이서의 저자는 1:1절에서 자신을 '장로(長老)'로 표현한 사도 요한입니다. 그리고, 요한이서의 수신자는 1:1절에 보면 '택하심을 입은 부녀(婦女)와 그의 자녀'입니다. 이는 어떤 지역교회와 그 교회의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요한이서의 기록 목적은 요한일서와 같습니다. 다만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계를 좀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왜곡하고 변질시키는 거짓 교사들에게 동조하거나 사귀지 말라고 강력히 경고하였습니다. 이것은 거짓 교사들에 대한 개인적 감정 때문이 아니라, 교회의 복음적 순수성을 유지하게 하고, 성도들을 이단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먼저 7절은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요한은 초대교회 시대에 이미 적그리스도가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적그리스도의 특징을 세 가지로 말했습니다. 첫째는 미혹하는 자입니다. 둘째는 한 명이 아니라 많은 사람입니다.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부인하는 자입니다. 적그리스도는 헬라어 원어로 ‘안티 크리스토스’인데, ‘안티’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대적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안티 크리스토스’는 어떤 사람이나 세력이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일을 대적한다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대신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안티 크리스토스’는 어떤 사람이나 세력이 그리스도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다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가 되면 많은 적그리스도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경계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이미 많은 적그리스도들이 나타났기 때문에 우리가 ‘마지막 때’에 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지막 때’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마지막 때’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넓은 의미로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 때까지의 기간을 말합니다. 둘째는, 좁은 의미로 마지막 날들 중의 마지막 때, 곧 재림의 때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요한은 넓은 의미로서의 ‘마지막 때’를 말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미 초대교회 시대에 많은 적그리스도가 존재하였음을 말합니다. 사도 요한에 의하면, 적그리스도는 참된 신자들에게서 떨어져 나가 마치 그리스도인인 체 하는 사람들입니다. 또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거부하고 미혹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복음을 외치되, 거짓 복음을 가르치는 교회 내의 적들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모든 기독교 이단들이 적그리스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적그리스도는 말세(末世)에 있을 환란 시기에 등장하는 한 사람의 ‘군사 지도자’이자 ‘정치적 지도자’를 가리킵니다. 적그리스도는 요한계시록 13장에는 머리가 일곱이며 뿔이 열 개가 달린 사나운 짐승으로 표현되었는데, 사람의 모습을 하였으나, 사나운 짐승과 같은 잔인성을 가진 자를 짐승으로 상징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로마의 네로 황제, 600만 유대인을 죽인 나찌의 히틀러, 2천만 소련인을 죽인 공산주의자 스탈린, 4천 5백만 중국인을 죽인 모택동, 북한의 김일성 등이 적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생각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때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는 이들의 잔혹성을 모두 합친 것 같은 자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4:4-5절에서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마태복음 24:23-26절에서는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적그리스도의 이적이 베풀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적에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멸망하는 자들은 사탄과 적그리스도의 눈속임에 넘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사랑을 받아 구원함을 받은 성도들은 결코 그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부지런히 진리의 성경 말씀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8-9절을 보면 “너희는 스스로 삼가 우리가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받으라.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일한 것’은 요한을 비롯한 많은 사도들이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수고한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온전한 상’은 그리스도인이 신실하게 행한 진리와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온전한 영생의 보상을 의미합니다. 또 한편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아니라, 영지주의의 신비한 지식을 깨달음으로써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이런 자는 예수님은 물론이고 하나님조차도 상실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0-11절에서 ‘집에 들이지도 말라’는 것은 사적(私的)인 환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혹하는 자들을 ‘집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는,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미혹하는 자들을 공식적으로 환대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기에 금지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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