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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16일 주일설교 요약 운영자 2022-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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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본분 (전도서 12:13-14)

 

전도서(傳道書)1:1절에서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저자가 누구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아들 가운데 예루살렘에서 왕이 된 사람은 솔로몬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전도서의 저자는 솔로몬입니다. 전도서는 솔로몬이 인생의 끝자락에 쓴 책입니다. 즉 솔로몬이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러, 자기가 걸어온 인생길의 발자취를 돌아보면서, 잘못한 것들을 뉘우치는 심정으로 기록한 것이 전도서입니다.

 

전도서에는 전도자라는 말이 모두 일곱 번 등장합니다. 솔로몬은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지위와 명예와 권세와 부귀와 쾌락을 다 누렸지만, 결국은 그 모든 것이 헛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솔로몬을 전도자로 세우셔서 전도서를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마치 박해자 바울을 들어서 로마서를 기록케 하신 것과 같은 섭리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전도서 전체를 살펴보면, ‘전도자라는 말이 첫 장과, 마지막 장에 각각 세 번씩 집중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전도서를 통해서 말씀하려는 핵심적인 주제가 첫 장과, 마지막 장에 들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첫 장의 요지는 무엇일까요? 1:14절의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 하나님을 떠난 불신자들이 추구하는 삶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러면 마지막 장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12:13절의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라는 말씀입니다. 전도서는 이 두 마디를 전해주기 위해서 기록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중간에 있는 내용들, 2장에서 11장의 내용은, 불신자들이 추구하는 삶이 헛되고 헛됨을 구체적으로 진술한 것입니다.

 

헛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헤벨입니다. ‘헤벨호흡’, ‘’, ‘증기’, 안개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도서에서 전도자가 사용한 헤벨이라는 표현은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첫째, 인생은 아주 짧다는 뜻입니다. 둘째, 아무 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전도서에서 전도자의 고민은 죄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의 허무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결론에 가서, 눈을 해 위로 돌려, 창조주 하나님을 찾음으로써, 인생무상(人生無常)의 문제를 해결합니다. , 전도서1-2장에서 해 아래에서의 인생의 허무함을 탄식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3장에서는 그 인생이 하나님의 예정 아래 있음을 진술하고, 4-11장에서 다시 해 아래에서의 허무한 인간사(人間事)들을 논한 후에, 마지막 12장에서 해 위의 하나님을 찾음으로써 인생의 허무함을 극복할 것을 권면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전도서에는 해 아래라는 말이 29, ‘헛되다는 말이 39회 등장합니다. 전도서에서 해 아래라는 말은 자연인(自然人)’, 육에 속한 자의 삶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헛되다라는 말은 하나님을 떠난 삶의 무의미함과 허무함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이처럼 헛된 인생이 되었습니까? 7:29절은 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곧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하고, 타락의 결과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전도서의 구조(構造)를 좀 더 자세히 관찰해보면, “해 아래서의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 그러므로 영원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큰 주제 아래 4개의 단락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단락의 결론은 3:14절입니다. 둘째 단락의 결론은 5:7절입니다. 셋째 단락의 결론은 7:18절입니다. 넷째 단락의 결론은 8:12-13절입니다. 마지막 12장은 전도서의 결론 부분입니다.

 

먼저 12:1절에서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12:13절에서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하는 총 결론에 이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 그라고,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는 화목제물이를 드려줄 중보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친히 화목제물이 되셔서 희생제사를 드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노라고 한 주님 당시의 제사장, 서기관, 장로, 바리새인들이 어찌하여 심판을 당하고 멸망을 받았습니까? 그들이 예배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 즉 화목제물과 이를 드려줄 중보자인 예수님을 배척했기 때문입니다.

 

전도서는 해 아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온갖 것을 다 소유하고 경험해본 한 전도자의 뼈아픈 충고를 통해서, 읽는 이와 듣는 자로 하여금 지옥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일을 당하지 않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또 다른 구원 초청입니다. 유대인들은 초막절(草幕節)전도서를 낭독했습니다. 이는 인생 여정이 초막에 머물다가 떠나는 행인과 나그네와 같은 삶임을 일깨워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전도서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복음 초청으로 끝을 맺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고 하는 심판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구원과 심판은 동전의 앞뒤와도 같습니다. 전도자는 복음 초청을 거절하는 자들을 향해서,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해 아래의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마십시오. 그러다가는 여러분도 생을 다 살고 나서, 솔로몬처럼 인생을 헛살았구나 하고 탄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말한 것처럼 주 안에서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일생을 다 보내고 난 뒤에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처럼 해 아래서의 수고는 헛되고 헛되지만, 주 안에서의 수고, 즉 해 위의 세계를 바라보는 삶은 우리를 영광스러운 길로 인도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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