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6일 주일설교 요약 | 운영자 | 2021-09-25 | |||
|
|||||
성벽을 중수(重修)한 느헤미야 (느헤미야 1:1-11) 느헤미야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위로하신다”는 뜻입니다. 느헤미야는 에스라가 2차로 포로 귀환한지 13년 후인 주전 444년에 예루살렘 총독으로 부임하였습니다. 이것을 3차 포로 귀환이라고 합니다. 주전 536년의 1차 포로 귀환 때는 약 5만 명이 돌아오고, 주전 455년의 2차 포로 귀환 때는 약 1,700명이 돌아왔는데, 주전 444년의 3차 포로 귀환 때는 총독 느헤미야와 그의 수행원들 소수만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왜 갈수록 고국으로 돌아가는 유대인의 수가 줄어들었을까요? 그것은 페르시아 제국에 남아있는 유대인들에게, 고국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가난하고 어렵게 살고 있다는 소식이 계속하여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 페르시아 제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안정되고 여유로운 생활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고향이 좋아도, 먹고 사는 것이 힘들면 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느헤미야는 바로 이런 생각에 역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고국으로 귀환한 동포들, 특히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동포들이, 무너진 성벽 때문에 주변의 이민족들로부터 약탈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페르시아 황제의 술관원이라는 높고 안정된 지위를 내려놓고, 귀국을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속 계획에 따라서, 스룹바벨은 불타버린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였고, 에스라는 종교적인 개혁으로 내면적인 성전, 즉 심령의 성전을 건축하였으며,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을 보호하는 성벽을 다시 건축하여, 예루살렘의 거민들이 안전하게 거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처럼 외면적인 성전, 즉 건물로서의 교회와 내적인 신앙 공동체로서의 교회, 교회를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는 정치적이고 행정적인 제도와 안전장치 등 세 가지는 오늘날에도 꼭 필요한 것들입니다. 주전 455년, 에스라가 귀환하여 말씀 중심의 개혁을 하면서 큰 부흥을 일으켰지만, 여전히 예루살렘의 백성들은 불안에 떨며 살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벨론 군대의 침공을 받아 무너진 성벽은, 200년 동안 무너진 그대로 있었고, 성문도 불타서 원수들에게 공격을 받고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포로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이 성전도 재건하고 말씀의 부흥 가운데 있지만, 성벽이 무너지고 성문이 불타버린 채로 있는 탓에 불안해 한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자기를 예루살렘에 보내시어, 무너져 있는 성벽과 성문을 재건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느헤미야의 기도에는 네 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첫째, 금식과 애통을 동반하였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았습니다. 셋째, 자기 죄뿐 아니라 자기 조상들의 죄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넷째, 그의 기도는 구체적 상황의 변화를 기대하는 것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상황이 변화될 것을 구체적으로 희망하였고, 특히 아닥사스다 왕의 은혜를 입을 수 있기를 간절히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기도에 즉시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의 기도에 이처럼 빠르고 놀랍게 응답하신 것은, 그의 기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 즉 다른 사람들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서, 자기 자신의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희생하려는 기도였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한 것은, 여느 성을 건축한 것과는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은 다른 성들과 달리, 하나님의 거룩한 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의 거룩함이 지켜지려면, 성벽과 성문이 있어서, 성 안과 밖이 철저하게 구분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만일 성벽이 무너지면, 성 안과 밖이 섞이게 되고, 거룩함 또한 무너지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의 도움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벽을 건축할 수 있었습니다. 성벽뿐만 아니라, 유다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무너진 신앙심도 다시 세울 수 있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성을 쌓기 시작하자 온 백성이 함께 성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온갖 방해와 위협과 유혹을 물리치고, 사람들을 동원하여 불과 52일 만에 성벽 중수(重修)를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총독 스룹바벨과 제사장 예수아가 중심이 되어 성전을 중건할 때도 사마리아인들의 방해가 있었고, 15년간 중단되었던 성전을 다시 건축할 때도 역시 방해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00년 동안 무너지고 훼파된 성벽을 다시 건축하는데도 역시 방해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방해들은 모두 사탄이 배후에서 역사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참된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참된 성전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과정에서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구별된 삶을 구축하는데 있어서도, 사탄의 방해는 결코 쉬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성전을 보호하는 성벽이 있었듯이, 우리 마음에도 성벽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은, 죄악과 사탄이 함부로 우리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켜주는 영혼의 성벽입니다. 느헤미야 6:15-16절은 “성벽 역사가 오십이 일 만인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습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느헤미야가 한 일 같지만, 실은 하나님께서 느헤미야를 동원하여 하신 일이었습니다. 대적들도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52일 만에 성벽 중수의 역사가 끝나자,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만이 영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할렐루야!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