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19일 주일설교 요약 | 운영자 | 2021-09-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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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주신 이유 (디도서 2:11-14) 디도서는 사도 바울이 그레데교회에 남겨 둔 디도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그레데는 그리스의 크레타 섬입니다. 디도라는 이름은 ‘공경하다’라는 뜻인데, 부모가 모두 헬라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디도서 1:4절에서 바울은 디도를 가리켜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된 디도’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디도와 함께 동행하며 여러 가지 일을 하였는데, 바울은 특히 세 가지 임무를 디도에게 맡겼습니다. 첫째는, 고린도교회에서 내부적으로 파당으로 인한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수습하기 위해 디도를 파송한 것입니다. 둘째는, 예루살렘교회를 돕기 위한 구제헌금을 보낼 때 그를 파송한 것입니다. 셋째는, 문제가 많은 그레데교회의 사역자로 디도를 파송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디도는 중대한 임무를 띠고 바울을 대신하여 파송될 정도로, 성실하고 믿음직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레데교회는 디도와 같이 헌신적이고 진실된 사람도 사역하기가 어려운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런 교회와 성도들을 포기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디도에게 보낸 바울의 목회적 조언은, 성도들을 엄하게 꾸짖고, 가르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내하며 가르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바울도 에베소교회에서 3년 반 동안 밤낮으로 눈물로 가르쳤습니다. 앞에서 바울은 연령과 성별에 따라 어떻게 훈계할지를 세세하게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오늘 설교 본문인 2:11절 이하에서는, 왜 그래야 하는지 그 이유를 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경에는 생략되었지만, 원어 성경과 영어성경에는 ‘왜냐하면’이란 접속사가 있습니다. 즉 “입으로는 하나님을 시인하지만, 행위로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그런 성도들에게, 너 자신이 본을 보이며, 엄하게 가르쳐라. 왜냐하면,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은혜로 양육하시기 때문이다”라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 본문은, 11절에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영어성경과 다른 한글 번역 성경들을 보면,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다”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말의 순서가 바뀌었지만, 그 의미는 완전히 다릅니다. 즉, 11절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신다는 것아 아니라, 하나님은 구원의 기회를 예수님을 통해서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셨지만, 오직 믿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에게만 그 구원이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우리 안에 들어오면,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변화’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았다는 말은, 우리 안에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사람은, 실은 아직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 은혜를 체험했다고 해서, 그 즉시 온전히 거듭난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심은, 우리를 즉시 천국으로 데려가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천국으로 데리고 가시기 전에 먼저 교회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영생의 소망을 이루는 날까지, 바르게 살아가도록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 훈련시키고 가르치십니다. 이것이 바로 양육(養育)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양육하시는 것은, 두 가지 측면입니다. 첫째는, 부정적인 측면입니다. 그것은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버리는 것입니다. 둘째는, 긍정적인 측면입니다. 이 세상 정욕을 버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 정욕을 버리고 나면, 이젠 주님과 함께 성화(聖化)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다시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신중함입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내면의 욕망을 제어하며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의로움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공정하고 진실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경건함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양육하시는 세 번째 목적,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입은 성도들에게 기대하시는 세 번째 변화된 삶은 ‘복스러운 소망과,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사는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이 세상의 정욕 대신, 영생에 대한 복스러운 소망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충만한 성도는, 이제는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갑니다. 마지막 14절은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했다”는 것은,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모든 불법의 결과인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속량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죄의 대가를 대신 치르시고 죽으심으로써, 우리는 죄에게서 해방되어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는 ‘속량’의 의미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으로써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습니까? 첫째는, 우리를 깨끗하게 하여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더러움이 있으면,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도 없고,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그릇이 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로 구원하신 것은, 우리의 삶이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모두 천국으로 데리고 가시려는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로 구원하신 이유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그것은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진정으로 어떠한 것인지를 안다면, 즉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우리 대신 희생 제물이 되게 하셔서,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신 것을 안다면, 우리는 그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하여,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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