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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3월 29일 주일설교요약 | 운영자 | 2026-03-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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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0장 16절 (거짓 증거하지 말라) 1. 진실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거짓말은 거짓된 자아, 즉 거짓된 인격에서 나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인격을 갖지 못하면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오염되어서 거짓으로 표현하게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사람에게 준 것이 언어(말)입니다. 하나님은 수많은 짐승을 만드셨지만 언어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사람에게는 언어를 주셔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교제하는 관계로 삼으셨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사람과 소통하며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에서 인류의 조상이 타락할 때 말을 사용하는 사람이 악하게 됨으로써 말도 자연히 악하게 사용되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말의 타락이 두 가지 방향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먼저는 ‘거짓’입니다. 하나님이 처음 인류를 창조하셨을 때는 거짓말이 없었습니다. 다만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인간이 타락하면서 거짓말이 생겨났습니다. 또 하나는 타락한 인간이 ‘말’을 사용할 때 이웃에게 해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홉 번째 계명은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이 계명은 우리의 말이 진실해야 한다는 것과 말로 이웃을 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두 가지 뜻을 담고 있습니다. 원래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아홉 번째 계명은 좁은 의미에서는, “법정에서 위증하지 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웃 간에 시비가 생겼을 때 법정에 증인을 세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증인이 위증을 함으로써 이웃의 생명과 명예와 재산을 해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법정에서의 거짓증언만이 아니라 모든 거짓말을 싫어하십니다. 그리고 거짓말은 마귀에게 속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는 마귀를 가리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이 말씀은 주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질책할 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에 능통했고 성경을 잘 알고 있었던 바리새인들을 가리켜 마귀에게서 난 자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살인을 일삼고 진리를 말하지 않고 입만 열면 거짓을 말했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한 최고의 전략으로 내세우는 것이 거짓말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중상과 모략, 비방과 수군거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가증한 것들을 매우 싫어하십니다. 진리는 교회를 세우지만 거짓은 교회를 허뭅니다. 우리가 진리 안에서 거하며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이미 교회를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 아무리 많은 봉사와 일을 한다고 해도 누군가를 비방하고 중상모략한다면 그 사람은 교회를 허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진실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열왕기상 21장 19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는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 이 말씀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아합왕과 이세벨이 서로 음모를 꾸며 하나님을 섬기던 경건한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습니다. 그때 법정에 불량배 두 사람을 세워 거짓된 말로 위증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봇을 성읍 밖으로 끌고 나가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리고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그들이 지은 죄의 결과에 관해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야의 예언대로 두 사람은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편 기자처럼 이렇게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141:3). ‘파수꾼’은 높은 성루에 올라 적군이 오는지를 살피는 보초입니다. 그런데 시편을 쓴 저자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적군을 감시하기 위하여 파수꾼을 세워 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을 지키는 파수꾼을 세워 달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입술을 지킬 수 있을까요? 말은 인격의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짓말이 그 사람을 거짓된 사람으로 만들기보다는 그 사람이 거짓되면 자연스럽게 거짓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반대로 진실된 말이 그 사람을 진실된 사람으로 만들기보다는, 그 사람이 진실된 사람이면 그 사람의 입술에서 늘 정직한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실된 말을 하기 앞서 정직한 인격을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윗은 시편 139편에서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시139:23-24). 다윗은 누구보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자기의 죄악을 찾아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있는 죄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를 갖고 사는 것이 진실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진리로 거짓을 물리치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진리되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영원토록 변함없는 말씀을 의지하며,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진실을 말하는 자들이 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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