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13일 주일설교요약 | 운영자 | 2025-07-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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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디모데후서1:15-18절 개역개정15.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 16. 원하건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17.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음이라 18. (원하건대 주께서 그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 또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디모데후서 1장 15-18절 (위로의 말 한마디) 1. 낙심과 상처를 주는 사람
사도 바울이 체포되어서 수감 되었던 그 당시 사회적 분위기는 매우 어수선하고 암울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핍박이 매우 컸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드러내 놓고 신앙생활 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매우 컸습니다. 그래서 생명을 내걸고 예수 믿어야 하는 각오와 결단이 필요한 시대였습니다. 더군다나 사도 바울과 같은 핵심 인물과 친분이 있다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행동이었습니다. 이렇게 그 당시는 믿음을 지켜나가는 것 자체가 고난의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신앙의 양심을 팔아야 하는 경우가 교인들 사이에서 발생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잘 묘사해 주고 있는 말씀이 15절입니다.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있느니라” 이 말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진심어린 마음을 담아 표현하는 구절입니다. 디모데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사실들을 주지시키고 있습니다.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렸다’고 표현한 것은, 그만큼 바울을 떠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바울을 배신하게 되었을까요? 바울이 감옥에 투옥된 것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안전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투옥되었을 때와는 달리 현재 분위기는 매우 절망적인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바울의 사면을 위해 노력하거나 바울과의 친분을 노출시키는 행위는 자신의 생명과 가족의 목숨을 담보로 걸어야 하는 모험이었습니다. 이렇게 바울로 인해 박해와 핍박을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로 하여금 배신적 행위를 하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고난받는 사도 바울을 부끄럽게 여기고 교인들을 선동하여 바울에게서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다가가셨습니다. 병든 자를 고쳐주셨고, 굶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셨고, 슬픔에 빠진 자들과 함께 우시며 위로의 손을 내미셨습니다. 이것이 어려움에 사로잡힌 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모습이셨습니다. 어두운 현실 속에 갇힌 자들 곁을 지켜주신 예수님의 삶이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4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자기의 이익뿐만 아니라 타인의 이익도 돌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사는 자들은 자기 이익과 자신의 삶에만 집중하기보다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에 집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군가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세워주는 섬김의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2. 기쁨과 위로의 사람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로마에도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바울로 인하여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감옥에 갇힌 그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바울 곁을 떠났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자기에게 유익을 주고 필요하면 곁에 있다가도 자기에게 불리해지면 등을 돌리고 떠나갑니다. 바울은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때 바울 곁을 지킨 사람 중 한 사람이 오네시보로입니다. 16절을 보면 바울은 오네시보로를 가리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17절에서는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 만났음이라” 18절에서는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그의 인간 됨과 신앙의 양심이 어떠한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구절입니다. 오네시보로는 잘 알았습니다. 감옥에 투옥된 바울을 찾아갔을 때,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있을 것이라 예측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적 양심만큼은 버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할 일을 당당히 했던 것입니다. 이 모습은 어떤 댓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의 행동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실천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이런 그의 모습으로 말미암아 상실감에 사로잡혔던 바울은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를 위해 기도합니다. “원하건대 주께서 그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 자신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오네시보로의 헌신적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하나님의 보상을 바라보며 소망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은 누군가의 곁을 지켜주고 함께 할 수 있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오네시보로가 감옥에 있는 바울 곁을 든든하게 지켜준 것처럼 고난과 어려움에 빠진 성도들 곁에서 언제나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님은 자신의 삶이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미리 아시고 있었지만, 끝까지 우리 곁을 지키며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나는 두 유형의 사람들 중 어느 쪽인가? 어려움에 처한 사람, 고통받는 사람, 모두가 외면하는 사람을 등지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들 곁에 함께 하며 그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는 사람인가? 그 질문을 갖고 자신의 신앙과 마음을 점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진단이 끝나면 결단하며 나는 어떤 모습으로 생활 속에서 적용하며 살아갈 것인가? 그 답을 찾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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