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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9일 주일설교 요약 운영자 2024-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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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유다서1:3-4절 개역개정

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유다서를 쓴 목적 (유다서 1:3-4)

 

유다서 1:1절에서 저자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라고 소개합니다. 여기서 야고보는 초대 예루살렘교회의 장로였던 예수님의 첫 번째 동생 야고보를 말합니다. 마태복음 13:55절을 보면 예수님에게는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는 네 명의 남동생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유다서의 저자는 예수님의 네 번째 동생이자 막내동생인 유다입니다.

 

유다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온 자신의 형 예수가 온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그의 삶이 송두리째 변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 강림을 체험한 후에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되어 자신의 전부를 주님께 바쳤습니다.

 

오늘 설교 본문인 유다서 1:3-4절은 본서를 기록한 목적을 말씀합니다. 유다는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길을 가르쳐 주고자 했습니다. 그가 이런 목적으로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려고 했을 때, 교회를 위협하는 이단들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처음 의도했던 것을 변경하여 성도들에게 이단들을 경계하도록 하는 내용의 편지를 쓴 것입니다.

 

여기 언급되고 있는 이단들은 그릇된 교리로 인하여 방종한 생활을 일삼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를 오해하여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하라고 말하는 일종의 도덕폐기론을 주장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와 같은 그릇된 교리로 인하여 자신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방종에 빠지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본서는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자들 가운데서 그리스도인이 아닌 자들이 어떤 자들인지 밝혀 주고 있습니다.

 

유다는 3절에서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이란 말은 구원받는 일에 있어서 모든 사람이 동일하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의 방법이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나 구원을 받습니다. 여기에는 예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다른 어떤 신분이나 지식이나 재산이나 성별이나 인종이나 민족의 차이도 없습니다. 이처럼 누구나 단순하고 일반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복음과 구원의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1:7절에서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고 경계했습니다. 우리는 인종이나 시대나 환경에 따라 변화되는 복음을 믿고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어느 시대나 어느 종족이나 어떤 역사적 배경 아래에나 모두 동일한 조건과 동일한 믿음과 동일한 방법에 의해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만일 이와 같은 일반적인 방법의 구원관이 아니라면 그것은 모두 다른 복음이며, 이단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유다는 일반적인 구원3절 하반절에서는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라고 하였습니다.

단번에 주셨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의해 구원을 완성시키셨다는 뜻입니다. 이 구원의 도리를 믿으면 그것으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단번에 주신 구원을 의심하여 다른 복음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울은 그런 사람들에 대하여 갈라디아서 3장에서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고 책망했습니다.

 

4절은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고 말씀합니다. 유다는 거짓 선생들과 이단들의 특징을 세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첫째로, 경건하지 않습니다. 경건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는 것으로 구원의 절대적인 조건은 아니지만,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에게 반드시 나타나는 결과이기에 경건은 곧 구원의 척도가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경건하지 않다는 것은 한마디로 그가 복음을 진실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었습니다. 이것은 거룩한 것을 매우 속된 곳으로 변질시키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는 어떤 죄라도 사할 수 있을 만큼 크므로 인간이 어떠한 죄를 지어도 무방할 뿐만 아니라, 죄가 크면 은혜도 크다면서 육체적 범죄 행위를 정당화시켰습니다. 또 쾌락주의적 생활을 추구할 뿐 아니라, 육체적 본성에 따라 사는 삶을 교리적으로 합리화시켰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단의 특징 중에 하나는 성적인 타락의 정당성을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이단에는 성적인 문제와 금전적인 부도덕이 있습니다.

 

셋째로,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했습니다. 여기서 주재(主宰)라는 말은 세상 만물을 다스리시는 최고 통치자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 그리고 하나님 되심을 부인하는 것을 말합니다. 영지주의 거짓 교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부인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사역을 부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누가 봐도 알 수 있고 부도덕한 이단에 현혹되는 것일까요? 사람들이 이단의 비상식과 부도덕을 정당화하는 것은 이단의 가르침이 치밀하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이단들이 추구하는 그것을 자신도 원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고잠시의 육체적인 쾌락에 만족을 누리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자들에 대해서 성도가 지켜야 할 자세는 무엇입니까? 유다는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단들의 거짓 가르침에 대해서 철저하게 방어하고 또한 그들의 거짓 가르침을 무너뜨리라는 것입니다. 이단의 공격에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더욱더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말씀의 들음을 게을리하는 삶은 무기 없이 맨손으로 전쟁에 임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영적 전쟁에서 항상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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