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6일 주일설교 요약 | 운영자 | 2024-05-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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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Ⅲ서1:1-12절 개역개정1.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5.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6.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7.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8. 그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9.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10.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11.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12.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 이런 목회자를 주소서 (요한삼서 1:1-12) 요한삼서는 사도 요한이 가이오라는 개인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 편지를 쓴 시기는 주후 95년경입니다. 사도 요한은 주후 100년경 94세의 연세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렇다면 요한삼서는 그의 연세가 90세 정도 되었을 때 쓴 편지입니다. 요한삼서는 전체의 길이가 열다섯 줄에 불과한 짧은 편지이지만, 목회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특히 목회자들이 어떤 자세로 목회에 임해야 하며, 우리는 어떤 목회자를 청빙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요한삼서는 매우 실제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여기서 세 사람의 목회자를 소개합니다. 첫째는 편지의 수신자인 장로 가이오이고, 둘째는 그와 함께 한 교회에서 장로가 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디오드레베이고, 셋째는 순회교사인 데메드리오입니다. 이 세 사람은 각각 참된 주의 종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정면(正面)교사로 또는 반면(反面)교사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먼저 가이오입니다. 가이오라는 이름은 “기뻐하다”는 뜻입니다. 1절에서 사도 요한은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고 말씀합니다. 이 당시 가이오는 같은 장로인 디오드레베의 농간에 의해 소수파로 내몰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느꼈을지도 모르는 가이오에게 사도 요한은 “내가 너를 참으로 사랑한다”는 따뜻한 말로 격려한 것입니다. 낙심하고 의기소침해 있는 사람에게 누군가로부터 여전히 사랑과 존중을 받고 있다는 느낌보다 더 큰 위로와 격려는 없습니다.
2절에서는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하고 말씀합니다. 사도 요한은 가이오의 영적 상태에 대해서는 아무 염려가 없는 것 같습니다. 3절에 보면 그는 “진리 안에서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의 육적 상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교회에서 밀려나게 되고, 매우 어려운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런 가이오를 향해서 사도 요한은 그의 영혼처럼 범사가 다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한 것입니다.
가이오는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것을 어떻게 확신합니까? 형제들이 와서 증거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형제들은 초대교회에서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서 순회한 교사들을 가리킵니다. 이 순회교사들이 가이오에 대해서 그가 진리 안에서 행하고 있다고 증거했다는 것입니다.
가이오가 진리 가운데 행한 일 가운데 하나는 순회교사들을 진실한 마음으로 영접한 것입니다. 5-6절은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5:40절에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가이오가 순회교사들에게 행한 대접이 하나님께 합당한 일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이오가 이런 일을 잘 감당하다가 다른 장로인 디오드레베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게 되면서 소수파로 내몰리게 된 것입니다.
이제 두 번째 인물인 디오드레베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디오드레베라는 이름은 “제우스에게 양육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는 양육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진리 안에서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도리어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자”였습니다.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본성으로 행하는 곳이 아니며, 육신의 생각으로 일하는 곳이 아닙니다.
첫째로 디오드레베가 한 일은 사도 요한을 악평한 것이었습니다. 둘째로 디오드레베가 한 일은 형제들을 접대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셋째로 디오드레베는 접대하고자 하는 다른 사람들까지 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넷째로 디오드레베는 참 성도들을 교회에서 내어쫓았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의 목회자가 잘못 세워졌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오늘 본문은 충격적으로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겸손하고 신실한 후임 목사님이 부임하도록 열심히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 번째로 소개되는 인물은 데메드리오입니다. 데메드리오라는 이름은 “백성의 어머니”라는 뜻입니다. 12절은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요한은 11절에서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본받아야 할 사람으로 데메드리오를 예로 든 것입니다. 그러면 데메드리오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첫째로,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의 칭찬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뭇 사람’은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즉 교회 안의 성도들만이 아니라 교회 밖의 사람들로부터도 칭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데메드리오는 진리의 증거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말씀에 비추어 그 사람을 판단할 때, 그는 정말 믿음의 사람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과 같이 여기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후임 목사님은 강해설교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을 잘하는 것과 설교를 잘하는 것은 다릅니다. 설교를 잘한다는 기준은 얼마나 성경에 충실하며 다양한 성경의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잘 전달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계속 설교를 통해서 폭넓고 균형잡힌 성경 지식을 얻기를 원한다면 후임 목사님은 반드시 강해설교를 하는 목사님으로 선택하되, 그분에게 설교 외에 다른 부담은 주지 마십시오.
오늘 말씀은 한 교회가 지도자를 세울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기도에 기도를 통하여 선출하라는 경계의 말씀으로 주신 것입니다. 교회에 지도자를 잘못 선출함으로써 파생되는 결과가 교회에 얼마나 치명적이며, 참된 성도들을 얼마나 큰 고통으로 몰아가는 것인지 생생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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