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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10월 22일 주일설교 요약 | 박찬우 | 2023-10-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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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5:38-48절 개역개정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마태복음 5:38-48) 기독교인들에게는 이스라엘의 평화가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회복과 평화가 예수님의 재림과 긴밀한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주님께서 다시 오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라고 질문한 제자들에게 결정적인 징조로 두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는 마태복음 24:14절에서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하신 말씀이고, 또 하나는 마태복음 24:32-33절에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세상 끝날이 가까웠다는 가장 확실한 첫 번째 징조는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는 것입니다. ‘세상 끝날’은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악한 세상을 심판하실 때를 말합니다. 그런데 만일 복음을 듣지 못해서 예수님을 알지 못해서 믿지 않은 것인데 심판을 받고 멸망한다면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된 후에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도록 정하신 것입니다.
세상 끝날과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있을 또 하나의 결정적인 징조는 이스라엘의 회복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3:38,39절에서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두 가지를 예언하신 것입니다. 첫째는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유대인들이 전 세계로 흩어지는 것입니다. 둘째는 세상 끝날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맨 마지막으로 구원받게 될 민족이 이스라엘이라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이 마지막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은, 유대인들의 완고함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회복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징조이지만, 결정적인 징조는 아닙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결정적인 징조는 유대인들의 민족적인 회심(悔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의 수는 미약합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스라엘 땅의 유대인들이 모두 모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고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그날을 위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속히 전쟁이 그치고 이스라엘에 평화가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팔레스타인의 무력단체 하마스의 잔인한 테러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거점인 가자지역을 폭격하는 것은 당연한 보복이라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가자 지역을 이스라엘에서 완전히 없애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주로 기독교인 중에서 그런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우리 주님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오늘 설교 본문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산상수훈(山上垂訓)’ 가운데 일부분입니다. 산상수훈은 “옛사람에게 말한 바 어떻게 하라는 말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렇게 하라”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38절의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것을 ‘동해복수법(同害復讐法)’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갖는 감정과 폭력을 통제하는 목적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은 억울한 일을 당했다 하더라도 복수심을 버리고, 자기가 누릴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사양하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참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네 가지 실례를 드셨습니다. 첫째는 “네 오른편 빰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네 번째는,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요약하면, 악을 악으로 대하지 말고, 한 수 위의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43-44절은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라고 말씀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으니, 이웃은 사랑하고 멀리 있는 사람은 미워하란 말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원수를 미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그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악한 자에게는 악으로 갚고, 선한 자에게는 선으로 갚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인과 선인에게 차별 없이 해와 비를 내려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 조건 없이 모두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브앤테이크’ 식의 사랑은 불신자들도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는 미워한다면, 불신자와 다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원수를 사랑하고 기도하며 축복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을 악으로 갚는 사람은 죄인이요, 선을 선으로 갚는 사람은 양심이 있는 사람이요, 악을 선으로 갚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아버지를 닮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불신자들과 다르게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과 달라야 합니다. 주님의 제자다워야 하고, 하나님의 자녀다워야 합니다. 그것은 원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지만, 그리스도의 본성에 따라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같이 또는 그 이상으로 복수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무슬림과 달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피는 더 많은 피를 부르고, 복수는 더 큰 복수를 부르기 때문입니다. 미움의 반대말은 사랑이고, 복수의 반대말은 용서입니다. 사랑과 용서만이 보복 전쟁의 악순환을 그치게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평화와 구원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십시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구원을 받아야 주님이 다시 오십니다. 그리고 그 땅이 평화로워야 평화의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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