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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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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5일 주일설교요약
운영자 2026.1.24 조회 96

[성경본문] 이사야43 : 1 - 7 | 개역개정

  • 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 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 4.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 5.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 6.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
  • 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임마누엘 (이사야 43:1-7)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만나죠. 단 하나의 인생도 그렇지 않은 인생이 없습니다. 모든 인생은 고난과 고통, 어렵고 힘든 시절을 만납니다. 예수를 믿어도, 혹은 그렇지 않아도 마찬가지이죠. 물론 하나님께서 그 고난 가운데 우리를 구해주시기도 하시며, 때로는 피할 길을 내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그러하시지는 않으시죠. 많은 경우에 그 고난과 역경들을 우리는 삶으로 경험해내야 합니다. 그리 유쾌하지는 않은 경험이지만 또한 피하고 싶은 경험이지만 그리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상황 속에서 혼란을 느낍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거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면 이런 일들은 나를 피해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들을 하고는 하죠.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변함없는 진리이며,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도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죠.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백성으로, 친히 부르셨으며 그 자격을 부여하셨습니다. 다행히도 하나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넌 내 것이야. 그러니까 넌 꽃길만 걸어야 해. 너를 향하는 모든 재앙은 너를 피해갈 거야"라고 말씀하셔야 할 것 같은데 바로 이어지는 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하나님께서 물을 막아주시고 불을 거두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물을 허락하시고 불 가운데로 지나감을 용인하십니다. 우리의 삶이 이와 같을 때가 많습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고 물이 코를 타고 들어와 한 줌의 숨도 쉴 수 없을 것 같은 상황도 주어집니다. 불이 나의 살갗을 녹일 듯 맹렬히 타오르는 상황도 우리의 삶 가운데 있습니다. 더 일어날 수 없고 희망을 찾을 수도 없고, 다시 회복한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 모든 상황을 하나님께서 막지는 않으십니다. 모든 고통을 거두어 가시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본문 2절에서 중요한 부분은 이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라." 물 가운데로 들어가게 되면 내가 너와 함께 들어가마.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나가야 할 때면 내가 그 맹렬한 불꽃 가운데로 함께 들어갈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 우리는 물을 피해가는 것이 아니라 물 가운데로 들어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넘실거리는 파도 속에서 침몰당하지는 않습니다. 맹렬히 타는 불꽃이 우리를 사를 것이라고 확신했었지만 우리 인생을 뒤돌아보건대 우리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름을 지으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을요. 마태복음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름을 특정하시지 않았습니다. 이름은 한계성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면서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의 사역은 우리와 함께하는 것이라는 말이죠. 하나님께서는 영으로만 계시면서 "아 참 힘들겠다, 아프겠다, 근데 난 안 겪어보긴 했어"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죠. 직접 육신을 입고서 이 땅으로 들어오셔서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수치와 수모를 겪으시고, 경험하지 않으셔야 할 고통과 고난을 맛보십니다. 그렇게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이죠. 그렇기에 그분은 아십니다. 우리가 물과 불을 지날 때의 고통과 고난이 얼마나 크고 고통스러운지 너무나도 잘 아시죠.

 

그분은 죄가 없으시기에 그리하실 필요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되레 우리가 받아야 했던 것들을 그의 몸에 친히 새기십니다. 그리고 우리 구원하시는 구원자가 되셨죠.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자이신데 그 구원하시는 이유를 본문은 이렇게 설명하고 계십니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나 자신을 바라보십시오. 어찌 사랑받을 만하십니까? 저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제 삶은 연약합니다. 저는 죄인이고 부족함 투성이죠. 그러나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무결하시고 무흠하신 그분께서 우리를 보시는데 우리더러 보배롭고 존귀하며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게 은혜입니다.

 

졸업하는 졸업생분들을 비롯한 우리가 모두가 이 땅을 살아가다 보면 기쁘고 슬픈 일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 바다를 지나서 구원받고서 광야를 걷게 됩니다. 3일째 되자 만난 것이 마라의 쓴 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쓴 물을 단물로 바꿔주십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을 이끄시는 곳이 엘림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마라를 만나기도 합니다. 그런 시간들을 지나면 엘림과 같이 쉼이 가득한 시간들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엘림에 주저앉아 살 수는 없었습니다. 마라이든 엘림이든 고통의 시간이든 기쁨의 시간이든 모두 지나가야만 합니다. 어느 곳 하나 내가 좋다고 계속 앉아있을 수 없으며, 인생이라는 광야는 지나쳐 가야 하는 길의 연속이죠.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은 그곳이 물이냐 불이냐 마라냐 엘림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길 위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분명하게 위기가 찾아올 겁니다. 그 누구도 막아줄 수 없을 때가 올 겁니다. 나 혼자만 그 고통과 고난의 시간을 감내해야 하는 때도 오겠죠. 그때 오늘 말씀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모든 순간들에도 하나님께서는 함께하신다는 것. 그리고 나를 향해서 보배롭고 존귀한 자라고 부르시며 나를 사랑해 주신다는 것. 만약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발견한다면 여러분의 쓴 물은 달디달아질 것입니다. 그분은 살아계시며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 하나님을 경험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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