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6월 22일 주일설교요약
- 운영자 2025.6.21 조회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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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무엘하19 : 16 - 30 | 개역개정
- 16. 바후림에 있는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급히 유다 사람과 함께 다윗 왕을 맞으러 내려올 때에
- 17. 베냐민 사람 천 명이 그와 함께 하고 사울 집안의 종 시바도 그의 아들 열다섯과 종 스무 명과 더불어 그와 함께 하여 요단 강을 밟고 건너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 18. 왕의 가족을 건너가게 하며 왕이 좋게 여기는 대로 쓰게 하려 하여 나룻배로 건너가니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할 때에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왕 앞에 엎드려
- 19. 왕께 아뢰되 내 주여 원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의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 20. 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기에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 하니
- 21.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대답하여 이르되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말미암아 죽어야 마땅하지 아니하니이까 하니라
- 22. 다윗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너희가 오늘 나의 원수가 되느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 23. 왕이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에게 맹세하니라
- 24.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 왕을 맞으니 그는 왕이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의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의
- 25. 예루살렘에서 와서 왕을 맞을 때에 왕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냐 하니
- 26. 대답하되 내 주 왕이여 왕의 종인 나는 다리를 절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그 위에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내 종이 나를 속이고
- 27. 종인 나를 내 주 왕께 모함하였나이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 28. 내 아버지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내게 아직 무슨 공의가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 하니라
- 29. 왕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 하니
- 30. 므비보셋이 왕께 아뢰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왕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그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하니라
사무엘하 19장 16-30절 (관용으로 화평을 이루는 사람)
1. 돌 던진 자를 이해할 수 있는 관용
16절을 보면, ‘시므이’라는 사람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16장에서도 등장했던 인물입니다. 시므이가 베냐민 사람 일천 명을 대동한 채 다윗에게 나아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므이는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을 피해 도망갈 때 다윗에게 돌을 던지며 저주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삼상 16:7). 여기서 ‘피 흘린 자’라는 것은, ‘피 흘림에 책임이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때 다윗 곁에 있던 장수 아비새가 시므이를 죽이자고 제안했습니다. 아비새의 행동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16장 10절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자신을 향해 돌을 던지며 저주하는 사람의 행동은 그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이 자신의 죄로 인해 발생했다는 것을 겸손히 고백했던 것입니다. 지난날 밧세바를 범했던 일과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죽인 일을 떠올려보니 모든 상황이 자신의 죄로 인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돌을 던지며 자신을 저주했던 시므이가 베냐민 사람 일천 명을 거느린 채 다윗 앞에 나아와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구하고 있습니다. 지난번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 주여 원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의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시므이가 왜 갑자기 이런 행동을 보였을까요?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는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잘못을 고백했던 것은 진정한 뉘우침에서 한 것이 아니라 다윗의 호의를 얻기 위한 임기응변의 태도였던 것입니다.
다윗은 시므이의 행동을 보며 그의 됨됨이를 잘 알았습니다. 상황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 가는 그의 간사한 면을 파악했지만, 모든 사건의 발단은 자신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관용으로 이해하고 넘기려 했던 것입니다. 자신을 모욕하고 왕의 자리를 위협하고 권위를 무너뜨리려는 자들을 그냥 놔두면, 언제 자신에게 반역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의 자존심과 형편을 먼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관용을 통한 화합의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이런 행동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살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감정을 내세우거나 인간적인 방법으로 상황을 풀어가려 하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 아래서 일어나는 일이었음을 확신하고, 시므이에게 관용을 베풀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영성과 신앙의 성숙함이었습니다.
2. 갈등 상황을 풀어가는 관용
24절에 가서는 므비보셋이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을 보자 이렇게 말합니다.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냐” 이 표현 속에는 책망과 섭섭한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므비보셋은 다윗과 함께 피신하지 못한 이유에 관해서 들려줬습니다. 27절입니다. “내 종이 나를 속이고 종인 나를 내 주 왕께 모함하였나이다” 피난 길에 함께 동행하고 싶었지만, 종의 모함으로 그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가 얼마나 진실된 사람이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24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왕이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의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의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향한 그의 진실된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과 므비보셋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사무엘상 16장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피신할 때, 다윗에게 므비보셋의 종 시바가 음식물과 나귀를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상황이 매우 어려웠던 다윗에게 음식물을 가지고 찾아왔으니 얼마나 큰 위로와 감동을 주었겠습니까!
하지만 시바의 행동에는 다른 뜻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다윗을 위하는 마음으로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행동은 아첨함으로써 다윗의 환심을 사기 위한 행동이었습니다. 그의 목적은 므비보셋에게 있는 재산을 차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다윗에게 므비보셋을 험담함으로써 다윗의 노를 유도해 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므비보셋에게 있는 모든 재산을 왕의 명령에 의해 온전히 자신의 소유로 삼는데 성공했습니다. 이것이 시바의 계산이 깔린 계획이었습니다.
이런 다윗의 결정은 결코 공정한 처사는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이처럼 공정하지 못한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은, 한쪽의 이야기만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당시 쉽게 왕래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양쪽의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다윗의 오해에도 불구하고 므비보셋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27절에서 말하기를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다윗의 공의로운 판단을 원하지만, 자신에게 불리한 판단을 내린다고 할지라도 그대로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다윗을 중심으로 네 사람의 유형을 살펴봤습니다. 시므이 같이 상황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바꾸는 간사한 사람, 아비새와 같이 옳은 잣대를 내세우며 강경하게 대처하려는 사람, 시바와 같이 속셈을 가지고 속임수를 통해 실리를 취하는 사람, 므비보셋같이 진실한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 이런 자들은 우리가 일상속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관용이 넘쳐나는 세상은 아닙니다. 어떤 이는 시시때때로 자신의 모습을 바꿔가며 유익을 취하려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옳음을 내세우며 그 기준에 따라 상대방의 약점을 잡고 늘어집니다. 또 어떤 사람은 속임수로 상대방의 것을 빼앗으려 합니다. 그렇지만 어떤 이는 진실되고 너그러운 마음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의 자녀로써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까요? 골로새서 3장 13절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빌립보서 4장 5절에서는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타인에 대한 관대함과 사려깊은 배려로 존중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관용은 우리 신앙생활과 삶에 있어서 시기와 다툼을 잠재우고, 용서와 사랑으로 화평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용서하며 살아가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앞서 언급한 유형들의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의 언행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온유하고 겸손함으로 관용을 베풀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과 훈련을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화합과 일치의 신앙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저와 여러분들의 삶 속에서 실천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나눔 질문 ♡
1. 사무엘상 16장을 보면 시므이가 다윗에게 돌을 던지며 저주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가슴에 박힌 돌은, 물리적인 돌이 아니라 저주의 말이었을 것입니다.
누군가의 가슴에 돌을 던진 적(최근, 과거)이 있습니까? 함께 나눠보시기 바랍니다.
2. 다윗은 자신을 둘러싼 갈등 상황속에서 관용으로 대처했습니다.
사적이든, 공적이든 갈등 상황이 발생했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대처하십니까.
또한 앞으로는 어떤 각오로 대처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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