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5월 4일 주일설교 요약
- 운영자 2025.5.3 조회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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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잠언22 : 6 - 6 | 개역개정
- 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언 22장 6절 (수동적인 부모)
1. 엘리의 아들
사무엘상 2장을 보게 되면, 1절부터 11절까지는 <한나의 기도>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2절부터는, <엘리의 아들들의 나쁜 행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2장 12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행실이 나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이 불량배였다는 뜻입니다.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제사장의 자격이 없다는 것을 폭로하는 표현입니다. 그들을 가리켜 ‘불량배’라고 불렀던 이 표현은, 제사장 직무수행 과정에서 일탈 행위를 지적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의 전부를 놓고 말하는 것입니다.
엘리는 제사장이었습니다.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할 때 그의 두 아들은 성소에서 아버지의 행실을 보고 자랐습니다. 제사의 규정을 보고 자랐고,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성소로 나아가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예배드리는 자세와 태도를 보았던 것입니다.그런데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자에게 목사 안수를 준 것과도 같은 것입니다.
13절부터는 그들의 나쁜 행실에 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 13절과 14절은 당시에 성소에서 행해지던 관습이었습니다. 그리고 15절부터 17절은, 홉니와 비느하스에 의해 행해진 새로운 악행입니다. 15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제사드리는 사람에게 이르기를 제사장에게 구워 드릴 고기를 내라 그가 네게 삶은 고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날 것을 원하신다” 제물을 바치기 위해 성소를 찾은 백성에게 자신의 종들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릴 화제에 앞서서 자신들의 몫을 떼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지금 제사장이라는 사람이 규정을 어기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7절에서는 이들의 행위를 부주의나 탐욕이 아닌 신성모독이라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면서도 엘리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때의 상황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삼상 2:29). 자녀 교육에 소홀하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엘리 가정에 임한 하나님의 책망이었습니다.
2. 다윗의 아들
사무엘하 12장에는 다윗이 하나님께 범죄한 것에 대해 책망받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어서 13장부터는 다윗 집안의 큰 문제들이 발생한 것을 기록합니다. 이 가정사에 문제가 일어난 것은, 다윗의 장자였던 암논이 압살롬의 동생 다말을 범하면서 부터입니다. 그런데 그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다윗의 태도는 어떠했습니까? 사무엘하 13장 21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 왕이 이 모든 일을 듣고 노하니라”
하지만 노하는데 그쳤을 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습니다. 훈계도 없었고, 그것에 관한 특별한 징벌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장자였던 암논에 대한 관대한 마음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런 사건이 있고 난 후 2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때 압살롬이 양털 깍는 행사에 다윗을 초청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거절합니다. 이번에는 장자였던 암논과 함께 동행해 줄 것을 요청하는데 또 거절당했습니다. 하지만 압살롬도 물러서지 않고 더욱 간청합니다. 그런 이유가 있었습니다. 압살롬은 그 기회를 통해 자신의 이복형이었던 암논을 죽일 계획이었습니다. 그래서 또한번 간청했을 때, 그때서야 다윗은 승낙합니다. 압살롬을 향한 다윗의 태도를 한번 보십시오. 그에게서 일관된 모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자녀들을 향한 다윗의 수동적인 태도입니다. 이 태도가 가져온 결과가 무엇으로 나타났습니까? 폭력과 피바람이 이 가정에 휘몰아쳤습니다. 먼저는 다윗의 장자이자 압살롬의 이복형이었던 암논을 압살롬이 죽였습니다. 또한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다윗을 제거하려고 했습니다. 결국에는 반란에 성공하지 못하고 압살롬은 군대장관 요압에 의해서 최후를 맞이합니다. 그러면 왜 그의 가정에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을까요?
이미 다윗의 가정에 피바람이 불 것이라는 것은 사무엘하 12장에 예고되어 있었습니다. 이유는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는 사건이 있었고, 우리아를 가장 위험한 전투에 내보내어 죽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죄로 말미암아 다윗의 가정에 불미스러운 일들이 발생할 것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꼭 이 가정의 복잡한 상황들을 그 죄만 가지고 풀어갈 것인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윗의 가정을 보면 가정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자녀를 향한 그의 태도를 보면 자녀 교육의 모습을 발견하기가 어렵습니다. 자녀들이 큰 죄를 범했을 때 단호하고 확고하게 조치를 취하는 모습도 없었습니다. 신앙교육의 현장을 찾아볼 수도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두 아버지에 대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엘리와 다윗은 ① 자녀를 사랑했습니다. ② 자녀 교육에 소극적인 태도, 수동적인 자세를 보여줬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공통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결과를 가져왔습니까? 더 많은 악행을 저질러졌고, 더 많은 살육이 발생하였고 끝내는 가정이라는 문턱을 넘어서 한 민족의 고통으로 다가왔습니다.
에베소서 6장 4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여기서 ‘양육하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영양분을 제공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아이에게 영양분을 제공해서 튼튼하게 만들어준다는 말입니다. 자녀를 양육해서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부모가 이 땅에 있는 동안에 가져야 할 책임입니다. 이렇게 자녀 양육은 교훈과 훈계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과 ‘수동적인 태도를 지니는 것’, ‘나쁜 사람이 되는 것’과 ‘지배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내 힘으로 아이들을 훈육하려 들면 두 가지 일이 일어납니다. 나는 강요하는 자가 되고 아이들은 반항하는 자가 되어갑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균형을 잃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나를 통하여 훈육하도록 맡길 때, 아이들의 삶 속에서 주님의 열매가 풍성하게 맺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 나눔 질문 ♡
1. 엘리 제사장과 다윗 왕의 아들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습니까?
2. 본인은 자녀의 신앙교육에 있어서 수동적인 사람입니까? 능동적인 사람입니까?
능동적인 사람이라면 어느 선까지 교육에 관여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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