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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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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2일 주일설교 요약
운영자 2024.6.1 조회 200

[성경본문] 사무엘하11 : 1 - 5 | 개역개정

  • 1.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
  • 2.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 3.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 4.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 5. 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신하였나이다 하니라

다윗과 밧세바 (사무엘하 11:1-5)

 

우리는 다윗을 성군(聖君)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래서 다윗과 밧세바의 이야기에서도 밧세바가 다윗을 유혹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밧세바는 결코 다윗을 유혹하지 읺았습니다. 밧세바는 전적으로 최고 권력자에 의해 성적으로 유린당한 피해 여성이었습니다. 만일 밧세바가 다윗을 유혹하여 간통한 부도덕한 유뷰녀였다면 어떻게 예수님의 족보에 이름이 기록된 네 명의 여성 가운데 한 사람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다윗의 인생에 있어서 분수령(分水嶺)’에 해당하는 사건입니다. 지금까지의 다윗의 삶이 계속 오르막길이었다면, 이 사건 이후의 다윗의 삶은 내리막길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최고의 자리에 올랐을 때 다윗이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아들들의 반란이 계속되고 민심의 이반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0:12절은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

 

오늘 본문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전쟁의 중요성을 보면 다윗이 왕으로서 결코 안일한 마음으로 쉬어서는 안 될 상황이었습니다. 만일 지쳐서 이번 전쟁에는 쉬고 싶었다면 남아서 기도라도 했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는 군사들을 전쟁터로 보내놓고 정작 자신은 여유롭게 낮잠을 잤습니다. 영적 긴장이 풀린 것입니다.

 

2절은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심히 아름다운지라고 하지 않고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고 말씀합니다.

정욕에 사로잡힌 다윗의 눈에는 심히 아름다워 보였다는 것입니다.

 

4절은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이 사건을 한 구절로 끝냈습니다. 그 여인에게 사람을 보내어 데려오게 하고 더불어 동침했다는 것으로 끝입니다. 다윗의 행동이 너무나 딱딱합니다. 둘이 나눈 대화도 없습니다. 서로 애정을 나누는 기미도 없습니다. 사건은 일순간이었고, 그 시간은 금방 지나갔습니다. 그저 한순간의 욕정이었음을 깨닫는 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지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반면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성경 한 구절이면 가능합니다. 어떤 일이든 성공은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반면에 실패는 한두 번의 실수면 충분합니다. 천하의 다윗도 이렇게 쉽게 허물어진다면 누가 과연 나는 그렇지 않다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5절은 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신하였나이다 하니라고 말씀합니다. 만일 밧세바가 임신을 하지 않았다면 다윗의 범죄는 감쪽같이 숨겨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밧세바가 임신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것은 다윗의 은밀한 죄를 폭로하기 위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 죄를 덮으려고만 했습니다. 그는 교활하게 전쟁에 나가 있던 우리아를 불러들여 밧세바와 동침하게 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아는 자신의 상관인 요압과 다른 동료 군인들이 적과 싸우고 있는데 어떻게 자기만 아내와 잘 수 있겠느냐고 거절하며 집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다급해진 다윗은 요압에게 몰래 편지를 보내,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다른 사람들은 뒤로 물러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처럼 죄는 더 큰 죄를 낳습니다.

 

사무엘하 11장 마지막 구절인 27절은 그 장례를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고 말씀합니다. 다윗은 밧세바를 서둘러 왕궁으로 데려와 아내로 삼음으로써 그가 간음죄를 범한 것을 감추려고 하였지만,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그에게 보내어 그의 죄를 책망하셨습니다. 시편 51편은 다윗이 지은 시인데,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 고백한 것입니다. 나단 선지자로부터 죄를 지적받았을 때 다윗은 그 자리에 거꾸러져 회개했습니다. 다윗의 위대한 점은 바로 이 참된 회개에 있습니다.

 

다윗이 눈물로 회개하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은 다윗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래서 죽임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비록 용서를 받았지만 죄의 댓가는 너무나 컸습니다. 아들들이 서로를 죽이고 아버지 다윗에게 반역했습니다. 밧세바와 간음하여 낳은 첫아들도 죽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에 대하여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죄를 지었어도 아무 징계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히브리서 12:6절은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다윗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밧세바에게는 죽은 아기를 대신 할 새로운 아이를 주셨습니다. 그 아이가 바로 솔로몬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다윗이 죄로 빠지게 된 통로는 나라가 전쟁 중인데도 불구하고 전쟁을 이끌어야 할 왕이 전쟁에 나가지 않은 것입니다. 왕이 왕으로서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고 자신의 몸이 편한 곳,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지도자들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또한 우리도 스스로를 돌아보며 우리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특히 타락한 이 사회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국내외 정치를 보면서 우리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우리는 과연 어느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끊임없는 고민과 실행을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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