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2월 11일 주일설교 요약
- 운영자 2024.2.9 조회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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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6 : 20 - 26 | 개역개정
- 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 21.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 22.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 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 24.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 25.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복 있는 자와 화 있는 자 (누가복음 6:20-26)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 5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산상설교 가운데 ‘팔복(八福)’과 유사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의 ‘산상설교(山上說敎)’에 비교하여 누가복음에 기록된 이 말씀을 ‘평지설교(平地說敎)’라고 합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밤을 새우면서 산에서 기도하신 후에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 가운데서 열둘을 뽑아 ‘사도(使徒)’로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그들에게 맡기시며 보내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시작하시기 전에 제자들이 가져야 할 각오와 마음가짐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신 예수님의 설교의 배경입니다.
오늘 설교 본문은 20절에서 23절까지 나오는 ‘네 가지 복(福)’과 24절에서 26절까지 나오는 ‘네 가지 화(禍)’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 네 가지 복과 네 가지 화는, 24절의 ‘그러나’라는 접속사를 연결 고리로 하여, 서로 교차적으로 짝을 이루며 대조를 이룹니다. 예수님은 먼저 어떤 자가 복이 있는지 말씀하시고, 이어서 어떤 자가 화가 있는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세상의 가치를 대조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무엇을 약속하셨는지 깨닫게 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과 '굶주리는 사람'과 '슬피 우는 사람'과 '배척받는 사람'은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결코 복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것은 화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런 사람이 복이 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나라의 역설(逆說)’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교훈의 핵심입니다.
첫째로, 가난한 자는 복이 있지만, 부요한 자에게는 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왜 가난한 자가 복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라고 그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복이 있는 이유는 그들이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의 산상수훈(山上垂訓)에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겸손히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반면에 부요한 자는 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요한 자가 화가 있다고 하신 것은 재물 자체를 나쁘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풍요가 하나님을 의지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와 부요한 자의 대조를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진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은 단순히 재산이 많고 적음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지만, 지금 배부른 자들은 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라고 표현하여 영적 의미를 강조합니다.
지금 배부른 자는 왜 화가 있습니까? 지금 배부른 자는 세상 것으로 만족하며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배부른 자는 자기 배만 불리는 이기적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 세상의 것들을 풍족하게 갖고 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에게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점점 주리게 될 것입니다. 육체적인 주림은 이 땅의 음식물로서 배가 부를 수가 있지만, 영적인 주림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않고는 배부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지만, 지금 웃는 자는 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의 병행구절은 ‘애통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무엇 때문에 애통합니까? 마태복음에 의하면, 자신이 주 앞에서 큰 죄인인 것을 깨닫고 그 죄를 슬퍼하며 애통하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지금’ 우는 자는 사는 것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 우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배고픈 자’라는 말씀과 마찬가지로, ‘지금 우는 자’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은 ‘지금’ 세상에서 명성과 인기와 부를 얻는 길이 아니라, 반대로 슬픔과 눈물과 고난의 길임을 암시합니다. 하지만 위로의 하나님께서는 머잖아 그들을 웃게 하실 것입니다.
반대로 ‘지금’ 웃는 자는 화가 있습니다. 머잖아 그들은 애통하며 울게 될 것입니다. 왜 ‘지금’ 웃는 자에게 화가 있습니까? ‘지금’ 웃는 자는 안락한 삶을 살면서 하나님께 무관심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금 놓치기 싫은 것들과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은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지금’ 웃는 자들은 머지않아 자신들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지옥의 고통 속에서 이를 갈고 가슴을 치면서 후회할 것입니다.
넷째로 나로 말미암아 핍박을 당하면 복이 있고, 반대로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사람들로부터 핍박과 배척을 당하는 이유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핍박을 받을 때 기뻐해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선지자들도 같은 일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로서 핍박받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앞서갔던 복된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과는 반대로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은 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들으려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칭찬을 얻기 위한 거짓된 행동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보다 사람들의 칭찬을 좇는 자는 결국 그 끝에서 비참한 결과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세상의 가치는 서로 다릅니다. 진정한 복은 이 땅에서 원하는 것을 다 누리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의롭게 살아가는 것, 누군가의 좋은 이웃이 되는 것이 참된 복입니다. 세상에 거룩한 영향력을 흘려보내며,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 진정한 복입니다. 올해는 부디 이 복을 받는 큰사랑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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