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2월 06일 주일설교 요약
- 운영자 2022.2.5 조회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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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과 술람미 여인 (아가 1:1-7)
아가서는 1:1절에서 “솔로몬의 아가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아가(雅歌)’는 한문으로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은 아가서(雅歌書)를 ‘쉬르 하쉬림’이라고 부르는데, ‘노래 중의 노래’라는 뜻입니다.
당시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반면에 솔로몬 왕의 연애 상대인 술람미 여인은, 하루 종일 포도원에서 일하느라고 얼굴이 검게 볕에 그을린 사골 처녀입니다. 이러한 솔로몬 왕과 시골 처녀 술람미 여인과의 사랑을 예표로 하여, 만왕의 왕 되시는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가 되는 교회와의 연합의 관계를 계시해주고 있는 것이 아가서입니다. 따라서 아가서는 평범한 남녀의 사랑 노래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측량할 수 없는 은총에 대한 예표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가서를 읽을 때, 자신을 술람미 여인의 위치에 놓고 읽어야 합니다. 아가서는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중요한 신학적 설명입니다. 술람미 여인이 잘나서 택함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사랑한 진정한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다만 우리가 아는 것은, 솔로몬이 신분과 지위를 초월하여 술람미 여인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진리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어떤 이유나 근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조건적인 사랑을 경험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조건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잘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와서 "내가 무엇을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리까?"라고 물었습니다. 우리도 내가 무엇을 하여야 구원을 얻는 것으로 잘못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9:30절을 보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요구를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할 일이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구원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구원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나를 선택하셨습니다. 나에게는 주님이 인정하실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 이유를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우리의 구원에 대한 유일한 근거입니다. 그분이 나를 사랑하셔서 선택하셨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아가서 1:5-7절에서 술람미 여인은 “예루살렘 딸들아”라고 말합니다. 술람미라는 조그만 시골 출신의 처녀가 수도 예루살렘, 패션과 문화의 중심지에 있는 여인들에게 당당하게 말합니다. 무어라고 말합니까?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답다”라고 당당하게 외칩니다. 흰 살결이 자랑인 예루살렘의 세련된 여인들에게, 솔로몬이 자기를 사랑하므로,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답다고 당당하게 외치는 것입니다.
또 술람미 여인은 “내가 비록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라고 말했습니다. ‘게달’은 ‘검은 장막’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휘장과 같다”고 했습니다. ‘솔로몬의 휘장’은 ‘게달의 장막’과 반대가 되는 것으로, 왕이 일 년에 한 차례 왕궁 밖에 나갈 때 치는 화려한 장막을 말합니다. 자신의 얼굴이 비록 ‘게달의 장막’과 같을지라도, 솔로몬이 자신을 사랑하므로, 그의 사랑을 받는 자신은 그렇게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충만한 사랑을 받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높은 자존감의 표현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계속하여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라”고 한 것은 나를 얕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보잘 것 없는 시골 처녀애 불과하지만, 장차 왕의 신부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장차 주님이 재림하시면 우리 모두는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말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고 합니다.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란 아버지가 다른 오빠들을 말합니다. 그 오빠들이 아버지가 다른 여동생인 술람미 여인을 미워하고 멸시하여 포도원에서 일하도록 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참 자신을 꾸며야 할 나이에도 자신을 꾸밀 틈이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다”는 말에는 술람미 여인의 깊은 마음의 상처가 담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의 사랑으로 술람미 여인은 그 모든 상처를 치유 받습니다. 점점 더 자신 있어지고, 아름다워집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신비이고 비밀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술람미 여인처럼 자신이 변화되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자신감이 생기고 점점 더 당당해질 것입니다.
7절에서 술람미 여인은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야, 네가 양 치는 곳과 정오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말하라. 내가 네 친구의 양 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린 자 같이 되랴”고 말했습니다. 7절은 예표론적으로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과, 그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들은 결코 버림을 받거나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아가서에서 핵심적인 요절은 2:16절과 6:3절과 7:10절에 세 번 등장하는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구나”라는 술람미 여인의 고백입니다. 그런데 이 세 구절이 그냥 반복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깊어짐에 따른 신앙적인 진보(進步)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아가서를 유월절(逾越節)에 낭독했다고 합니다. 이집트에서 바로의 노예로 살아가던 자들을 어린양의 피로 구속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피로 구속함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 신약의 성도들은, 더욱 아가서를 즐겨 읽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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