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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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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28일 주일설교 요약
운영자 2021.11.26 조회 417

지혜와 음녀(淫女) (잠언 9:1-18)

 

잠언은 한 마디로 지혜의 책입니다. 지혜는 히브리어로 호크마인데, 잠언에는 호크마지혜라는 말이 41나 등장합니다. 그런데, 잠언에서 말하는 지혜는, 세상에서의 성공을 위한 인간적인 처세술이 아닙니다. 잠언에서 말하는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잠언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말이 18번이나 나옵니다.

 

잠언 1:2절은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라고 잠언을 기록한 목적을 말씀합니다. 여기서 지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과 결부된 통찰력을 가리키고, ‘훈계(訓戒)’는 실천윤리로서 '도덕적 훈련'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명철(明哲)’은 참과 거짓, 선과 악 사이를 구별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잠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반부인 1-9장은 지혜가 무엇인가를 알게 하는 원리적(原理的)인 말씀으로 되어 있고, 후반부인 10-31장은 훈계를 알게 하는 상론(詳論), ,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지침들로 되어 있습니다.

 

잠언의 전반부인 1-9장에는 내 아들아라고 하는 아들19번이나 나옵니다. 그리고 지혜라는 말이 41번 나오고, ‘음녀(淫女)’ 또는 이방 계집이라는 말이 12번 나옵니다. 이것은 1-9장의 주요 내용은, ‘아들을 가운데에 놓고 지혜음녀가 서로 자기 소유를 만들려고 대결하는 구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구도가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 곳이 바로 잠언 9장입니다.

 

잠언 9장에는 두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 두 여인은 지혜라고 불리는 여인과 미련한 여인이라고 불리는 여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미련한 사람, 또는 어리석은 사람은, 지능이 모자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9장의 미련한 여인5장과 7장에서는 음녀(淫女)라고 하였고, 6장에서는 이방 여인이라고 하였습니다. , 미련한 여인음녀이방 여인은 같은 사람입니다. 그녀는 이스라엘 남자와 결혼한 이방 여인으로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음녀였습니다. 그녀가 음녀, 즉 음란한 여자가 된 것은, 음란을 장려하는 가나안 땅의 바알과 아세라 종교문화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여인미련한 여인, 이 두 여인은 각각 음식을 차려 놓고, 길을 가는 행인(청년)들을 부르며 자기 집으로 들어오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각 행인(청년)은 두 여인 중 한 여인을 선택하여 들어갑니다. 잠언은 이 사실을 누구와 식사를 하느냐?로 질문합니다. 고대 중동 사회에서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한 자리에 앉는다라는 뜻으로서 우리는 하나다”, “우리는 같은 편이다라는 의미였습니다. 특히 남녀가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몸을 섞는다는 뜻을 포함했습니다.

 

잠언 9은 절묘한 대칭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1-6에는 지혜로운 여인이 등장하고 13-18에는 음녀, 미련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이처럼 잠언 9지혜어리석음을 여인으로 각각 의인화(擬人化)하여, 그 여인들의 초청과, 그리고 인생의 길을 가는 청년들의 선택을 보여줍니다.

 

오을 본문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고대 중동 사회의 문화를 알아야 합니다. 고대 중동 지역에는 성안의 높은 곳에 그 지역을 다스리는 신의 신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신을 섬기는 여인들이 축제일에 시장으로 나와서, 자신들이 섬기는 신을 자랑하며 행인들을 신전으로 초대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지혜로운 여인도 사람들을 초대하고 있고, 미련한 여인음녀도 사람들을 초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 지혜로운 여인은 여호와 하나님을 참 신으로 모실 것을 호소하고 있고, 반면에 미련한 음녀는 거짓 신인 우상을 믿으라고 호객 행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10-12절에서는 지혜로운 여인이 지혜의 핵심을 선언합니다. 첫째,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경외(敬畏)’는 공경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거룩한 두려움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지혜의 근본이란. 모든 지혜의 출발점인 동시에 최상의 지혜라는 것입니다. 둘째,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며, 하나님의 뜻을 행합니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아는 것이 명철입니다.

 

미련한 여인도 높은 곳에서 떠들며, 길을 가는 행인들을 부릅니다. 이 여인은, 음식을 차려 놓지도 않고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 여인의 집은 기둥도 없습니다. 그래서 언제 무너질지 모릅니다. 또 이 미련하고 악한 음녀는 도적질한 음식으로 행인들을 초대합니다.

 

17절은 음녀가 행인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말입니다. “도둑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고 속삭입니다. 여기서 '도적질한 물'은 불륜하고 음란한 성관계를 가리킵니다. '몰래 먹는 떡' 역시 육체적인 음란 행위를 가리킵니다. 지혜로운 여인이 여종을 보내어 공식적으로 초청한 것과는 달리, 미련한 여인의 초청은 거리의 창녀처럼,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금지된 쾌락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거짓으로 사람을 기만하는 사탄의 음성입니다. 함께 누군가를 속이며 불의를 행하자는 제안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리석은 자들과 교만하고 거만한 자들은 그 음녀의 음성을 듣고 따라갑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스올입니다. ‘스올(Sheol)’은 악인들과 불신자들이 가는 끝없는 고통의 처소, , ‘지옥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오늘 설교 본문인 잠언 9장은,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지혜로운 여인의 초청을 외면하고, 거꾸로 음녀의 유혹에 이끌려 간 자들은, 결국 영원한 멸망의 장소인 스올로 끌려가는 것을, 선명한 그림으로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두 가지 길에서 하나를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길에 대한 선택의 결과는, 지혜로운 여인을 따를 때는 의와 거룩함과 경건과 생명이지만, 미련한 음녀를 따를 때는 불의와 더러움과 악함과 멸망입니다. 그러면, 오늘 저와 여러분은 누구의 음성을 들으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누구든지 자신의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떨어져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지혜는 사망으로 향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의 길로 돌이키라고 목이 터지도록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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